정부 “사교육 카르텔 발본색원” vs 전문가 “수능 개선만으론 사교육 못바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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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난이도 논란]
이주호 “학생 희생으로 교육계 이익”
킬러문항 폐지… 사교육 경감 나서
전문가 “논술-면접학원 쏠릴 우려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정부와 여당이 19일 발표한 사교육 경감 대책의 배경에는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역대 최대치인 26조 원에 달했다는 문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기반 선발 비중(정시)이 정원의 40%가량을 차지하는데, 상위권 성적이 이른바 ‘킬러 문항’에서 판가름 나면 학생들이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당정은 이런 초고난도 문제를 내지 않더라도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면 변별력을 갖춘 ‘공정 수능’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 사교육 카르텔 ‘발본색원’… “공정 수능 의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당정협의회 뒤 브리핑에서 15일 대통령이 언급한 교육 당국과 사교육 업계의 ‘이권 카르텔(담합)’에 대해 ‘발본색원’(뿌리를 찾아내 뽑는다)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척결 의지를 밝혔다. 이 부총리는 “카르텔이란 학생들의 희생을 통해 교육 종사자들이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라며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수능 준비가 안 되는 것은 정의에 맞지 않는다. 교육부부터 반성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정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수능 출제 기법을 고도화해 적정한 난이도를 확보하고, 출제 관련 시스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입시학원의 과대, 과장광고에는 엄중히 대응하고 그간 방치됐던 유아 사교육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공교육 강화를 위해 EBS 활용 및 방과 후 프로그램을 늘리고, 학생들에 대한 기초학력 진단과 맞춤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당정은 그간 교육 당국이 초고난도 문항으로 손쉽게 변별력을 확보하고, 사교육 업체는 ‘족집게 강의’ ‘킬러 특별반’으로 부를 축적하는 일종의 ‘공생(共生)’ 관행이 정부의 미온적 대처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부총리는 “교육부가 지도 감독을 잘못했다”며 “난이도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핀셋처럼 (킬러 문항을) 덜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여당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야당과 일부 교육업체가 사실을 왜곡해서 ‘물수능’(쉬운 수능) ‘불수능’(어려운 수능) 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지금처럼 사교육이 필수로 인식되고 공교육은 단지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교육비는 물론이고 저출산 같은 국가적 문제까지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정한 수능의 의지를 담은 지극히 타당한 대통령의 발언을 교육부가 국민에게 잘못 전달하면서 혼란을 자청한 것에 대해 엄중 경고한다”고 했다. 이 부총리도 “나도 전문가지만 (대통령에게) 진짜 많이 배웠다. 대통령이 교육 문제의 문외한이라는 말은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사교육 깃털도 못 건드려”

서울대 입학처장을 지낸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이날 본보 통화에서 “출제 문제를 고도화한다고 했는데, 입시업계에서는 그에 맞는 과정을 만들어 수험생들을 모집할 것”이라며 “수능 개선만으로는 사교육비의 깃털도 건드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능 출제 문항 몇 개를 손보겠다는 정부 여당의 해법으로는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수도, 수능과 입시의 공정성을 회복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줄여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이 처음 시도되는 것도 아니다. 2011학년도엔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EBS 교재와 수능 연계율을 70%로 높였지만 사교육 경감 효과는 미미했다. EBS 연계율은 최근 다시 50% 수준으로 낮아졌다. 2018학년도 영어 절대평가 도입도 큰 효과가 없었다. 2018년과 2019년 영어 사교육비 증가율은 각각 7.2%, 10.8%로 갈수록 더 올랐다.

전문가들은 ‘상대 평가’인 수능의 본질상 학생들이 더 나은 점수를 받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를 없애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안성환 대진고 교사는 “수능이 통과와 탈락을 가르는 자격시험화 혹은 전면적인 절대평가로 전환돼야 사교육 의존을 그나마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좋은교사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 그에 대비하는 사교육은 일부 줄어들지 몰라도 학교 내신이나 대학 면접, 논술 등에 대비하는 사교육으로 쏠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적어도 이런 발표는 수능이 끝난 뒤에 해야 했다”며 “현 입시제도의 근본 문제는 서열화된 상대평가 선발구도이기 때문에 이런 근본 원인을 없애지 않고서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당정협의에서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존치하는 내용의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도 논의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2025학년도부터 폐지하기로 했던 자사고 등을 존치해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사교육 카르텔#발본색원#수능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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