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제기한 약 1조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국제 소송에서 약 69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엘리엇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를 신청한 지 5년 만이다.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이날 오후 8시(한국시간)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게 5358만6931달러(약 6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엘리엇의 청구 금액 7억7000만달러(약 9917억 원) 중 배상원금 기준 약 7%만 인용된 것이다.
또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이 한국 정부에게 법률비용 3457만479.87달러(약 44억5000만 원)을 지급하고,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법률비용 2890만3188.90달러(약 372억5000만 원)를 지급하도록 명했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우리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7억7000만달러(약 9879억 원)의 피해를 봤다며 중재 신청을 했다.
엘리엇이 2015년 6월 4일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공정하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엘리엇은 당시 합병을 결정할 삼성물산의 주주총회 개최를 막아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했다. 결국 삼성물산 지분 1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찬성하면서 합병이 성사됐다. 엘리엇은 2016년 국내 법원에 제기했던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엘리엇은 “당시 청와대가 보건복지부를 통해 국민연금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에 찬성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게 했다”며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다면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외국 투자자를 내국인과 차별 없이, 국제법상 최소한의 수준 이상 대우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돼 작년 4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 판결 등을 근거로 들었다.
법무부는 이에 “엘리엇은 실패한 도박에 대한 책임을 한국 정부에 물으려고 한다”며 “국민연금은 불합리하거나 고의적으로 적법절차를 어겨 합병에 찬성한 것이 아니다. 삼성물산 합병이 엘리엇의 손실로 이어지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2018년 7월부터 엘리엇이 PCA에 ISDS를 제기하자, PCA는 그해 11월 이 사건을 심리할 중재판정부를 구성했다. 한국 정부와 엘리엇은 이후 서면으로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다가 2021년 11월엔 스위스 제네바에서 직접 만나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양측은 작년 5월 마지막 서면을 제출했고, 중재판정부는 올해 4월 절차 종료를 선언하면서 심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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