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사교육 논란]수능 가늠할 ‘9월 모평’ 내달 출제 착수
코로나 세대 수험생들 학력 저하
체감 난도 예측하기 쉽지 않아
난도-변별력 조절 실패땐 파장 예상
“출제 기법을 ‘고도화’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너무 추상적이다.”(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
“올해 출제위원장, 검토위원장은 특히 섭외하기 힘들 것 같다.”(서울 A고교 국어교사)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불과 147일 앞둔 22일에도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와 ‘변별력 유지’를 모두 잡아야 하는 교육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규민 원장 사임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채 9월 모의평가 출제에 내달 착수한다. 예년 같으면 평범한 시험이었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대통령의 지시가 얼마나 이행됐는지에 따라 교육계, 정부, 정치권에 후폭풍이 예상된다. 출제위원 입장에서는 중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난도 조절은 神의 영역”… 커지는 고심
출제 당국인 평가원의 가장 큰 고민은 출제 및 검토위원들이 문제를 만들 때 ‘예상한 난도’와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킬러 문항을 줄이고 ‘준킬러 문항’(킬러 문항보다는 덜 어려운 문항)을 늘리는 방식으로 난도를 조절해도, 수험생 집단의 학력 수준에 따라 평가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 특히 올해 수험생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학교 수업에 파행을 겪어 학력 저하도 심각하다. 학생들의 체감 난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변별력 유지’를 강조한 만큼, 교과 과정 안에서 출제를 하더라도 어려운 문제들을 몇 개는 내야 한다.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B 교수는 “기존에 가장 어려운 문제 정답률이 5∼10%였다면, 이젠 15%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국어나 영어에선 지문 길이나 주제에 따라 정답률이 널뛰기 때문에 조절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난도 조절은 ‘신의 영역’이라고도 한다”고 말했다. 난도를 낮춰도 학생들이 어렵게 느껴 정답률이 10∼20%대 이하로 낮아지면 결과적으론 ‘킬러 문항’이 되고 만다.
킬러 문항으로 평가된 문항들의 정답률이 의외로 높은 경우도 있다. 2022학년도 수능 국어 8번(헤겔의 변증법) 문항은 ‘킬러 문항’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입시기관이 추산한 정답률은 30%에 달했다.
● 6모 결과에 파장도… “출제위원 기피”
28일 공개되는 6월 모평 결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주호 부총리는 평가원이 이 시험을 출제할 때 ‘킬러 문항 배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와 입시기관의 판단은 다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6모가 공교육 밖에서 출제됐다는 의견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이 콕 집어 언급한 ‘국어’는 지난해 수능과 비교했을 때 고난도 문항의 정답률이 크게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투스에 따르면 6모 국어 영역에서는 ‘언어와 매체’ 33번 문항이 가장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는데 예측 정답률은 48%다. 응시생 절반은 맞힌 문제라는 것. 지난해 수능 국어에선 17번 문항의 정답률이 15%로 가장 낮았다. 김 소장은 “최근 2, 3년 동안 평가원은 킬러 문항의 난도를 낮추고, 준킬러 문항의 난도를 세분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9모 출제위원들은 ‘킬러 문항을 하나도 출제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출제위원은 교수, 교사들이 들어가는데 벌써 이들 사이에서 “올해 출제위원 참여는 피해야 한다”는 말도 나돈다. 교육부 감사, 평가원 감사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문제를 잘못 냈다가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고교 국어 교사는 “수능 출제위원이 되면 수당도 받고 경력에도 도움이 되는데, 그래도 올해와 내년은 피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인천의 고교 영어 교사는 “수능 출제위원은 교사 경력의 정점이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혹시 평가원 연락을 받아도 안 하겠다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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