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가 엘리엇에 1300억 배상?…법조계 “판단 틀렸다, 불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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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6월 23일 15시 43분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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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소송 결과를 두고 불만 여론이 커지고 있다. 법리적 판단에 따른 해석 차이는 물론 국부 유출에 대한 우려까지 나왔다.

심지어 ‘강자의 횡포’라 불리는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부에 대한 반발도 크다. 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부당하게 피해를 입기보다는 불복 절차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영국에 위치한 ISDS 중재판정부는 엘리엇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에 대해 지난 20일 한국 정부가 5359만달러(약 690억원)의 배상금과 법률비용 2890만달러(약 372억원), 지연 이자 등을 포함해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치열했던 소송전이지만, 결과에 대해 법조계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중재판정부 판정의 성급한 수용이 수천억원대 혈세 낭비로 이어진다는 점을 우려하며 취소소송을 통한 불복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봤다.

ISDS는 절차상 단심제이지만, 정정 신청을 통해 배상 원금과 지연 이자를 다시 계산할 수 있다. 특히 무엇보다 취소 소송을 통한 불복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같은 절차를 밟지 않고 중재 판정을 성급하게 수용하면 거액의 국무가 유출되는 셈이다.

실제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있다. 영국중재법 67조에 규정된 중재 취소사유인 ‘실체적 관할 위반’ 조항이 대표적이다.

중재 판정의 핵심 쟁점은 투자유치국의 조치가 정당한 정책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불공정한 차별이었는지 여부인데, 이번 사안은 ‘정부의 조치’가 아니다.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앞서 엘리엇은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불법 뇌물을 주고, 이를 대가로 옛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ISDS를 제기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정부의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이다. 상법상 특정 주주의 주주권 행사가 다른 주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발생시킬 수 없으며, 삼성물산의 주주인 엘리엇이 다른 주주인 국민연금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도 불가능하다. 즉 중재판정부의 관할권이 없는 사안이므로 중재 판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이미 정부는 론스타 ISDS 중재 판정에 대해서도 취소소송을 곧 제기하기로 한 상태다. ISDS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절차를 지연하고 부당하게 과세했다며 론스타가 배상을 요구한 ISDS 사건에 대해 2022년 8월 2억165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곧바로 배당원금과 지연이자가 과다하다며 정정신청을 했고, 이르면 오는 7~8월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액수가 2800억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라며 “내부적 판단으로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소송이 일회성이 아닌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2012년 론스타 이래 10건의 ISDS가 제기된 상태이며, 외국과 맺은 FTA에 대부분 ISDS 규정이 삽입된 점을 고려하며 엘리엇 중재판정 수용이 자칫하면 수조원대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은 엘리엇과 같은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ISDS에 2억달러 규모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스위스 기업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제대로 규제하지 않아 손실을 입었다며 1억9000만달러의 배상금을 청구한 상태다.

‘강자의 횡포’라 불리는 ISDS 개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ISDS는 실질적으로 선진국 투자자가 후진국에 투자해 문제가 발생한 경우 투자유치국(후진국) 법원에서 투자자가 받을 수 있는 차별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제도다.

노주희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변호사는 “ISDS가 론스타와 같은 페이퍼 컴퍼니를 보호해 주는 것, 선진국끼리는 ISDS를 하지 않는 이유, 국내 자본은 ISDS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살펴볼 만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교적 마찰 가능성이 적은 나라들과의 협정부터 ISDS를 삭제해 나가고, 국제사회의 ISDS 제도 개선 노력에 적극 동참하면서 ISDS가 포함된 BIT 규정을 전면 재점검하고 개정을 촉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ISDS는 당사국들의 법원이 아니라 사건마다 보수를 지급받는 외국 민간인들로 구성된 중재판정부에서 판정을 내리며,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엘리엇 중재 사건에서 행정 서비스만 제공했을 뿐 실제 판정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엇 중재 사건은 한국 정부가 동의해 중재지를 런던으로 정했기 때문에 영국에서 판정을 내렸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중재 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내는 곳도 PCA가 아니라 영국 법원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019년 “ISDS는 소송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예측 가능성이 매우 낮은 문제가 있다”며 “강자의 횡포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이것이 폐지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미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2017년부터 ISDS 개혁을 논의 중이며, 폐기 등 근본적인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고치는 과정에서 캐나다와의 ISDS 규정을 없앴고 유럽연합(EU) 유럽사법재판소는 역내 ISDS 제기를 무효라고 판결했다.

우리나라 투자가는 한 번도 승소해 보지도 못한(심지어 제기했다는 소문도 없는) 불평 부당한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장난질에 당한 케이스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례로 남을 수 있으니 제소를 해서 부당하게 국제적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지 말아야 한다”며 “이번 경험을 토대로 ISDS 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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