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아살해 24건중 12건 집유…최근 5년간 1심 판결문 분석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5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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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1심 판결문 전수 분석…절반은 집행유예

A 씨는 2019년 5월 클럽에서 만난 남성과 관계를 가진 후 아이를 가졌다.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이듬해 2월 부산 수영구의 한 교회 화장실에서 혼자 남아를 출산했다. 밖에 있던 어머니가 “왜 안 나오냐”고 재촉하자 A 씨는 2층 높이에서 신생아를 밖으로 던졌고, 아이는 두개골 골절로 숨졌다. 1심 법원은 2020년 8월 영아살해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어린 나이에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점,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25일 동아일보가 최근 5년(2018~2023년) 동안 영아살해·살해미수 관련 1심 판결문 24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이 중 12건(50%)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선 산모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 도입 등의 제도적 개선과 함께 처벌 강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아이 키우기 어려운 경제적 여건 감안”
영아살해·살해미수 판결 24건 중 실형을 선고받은 12건도 처벌 수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형법에 따르면 영아살해죄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내려진 건 △징역 2년 이하 8건(66.7%) △징역 3년 3건(25%) △징역 5년 1건(8.3%)이었다.

가장 무거운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사건의 경우 친모가 시신을 유기한 사실이 양형에 영향을 미쳤다. 해당 여성은 2019년 5월 화장실에서 출산한 후 신생아를 방치해 숨지게 했으며, 시신을 깡통 안에 넣은 채 소각을 시도했다.

재판부는 감형 이유로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20건)는 점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또 “출산 직후 정신적 불안과 충격 등으로 정상적 판단이 어려웠다”(14건), “전과 및 벌금형 외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12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불우한 가정환경을 고려했다”(6건)는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24건 중 미혼 상태에서의 범행은 22건(92%), 기혼 상태는 2건(8%)이었다. 범인은 친모가 22건, 친모와 친부가 함께인 경우가 2건이었다. 범행 장소는 화장실이 많았고, 범행 동기로는 “경제적으로 양육할 형편이 안 됐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호출산제 도입하고 처벌 강화해야”
최근 수원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이 출생신고 하지 않은 두 아이를 살해한 후 냉장고에 유기한 사건이 드러난 후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하고 아이를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된다면 막다른 상황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숨지게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아살해죄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영아살해죄는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당장 먹고 살 게 없어 아이를 키우기 어려웠던 당시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영아살해죄를 더 무겁게 처벌해 생명 경시 풍조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미혼모들이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혼자 아이를 키워도 국가에서 충분히 지원해 줄 것이란 믿음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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