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일어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민사소송 2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운전자 측이 유사 판례를 근거로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26일 운전자 측 변호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에 따르면 이날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EDR(사고기록장치) 신뢰성 상실의 근거를 제시하며 운전자의 무죄를 주장했다.
원고 측은 “차량이 우측으로 전복되면서도 가속페달을 99% 계속 밟았다고 EDR에 기록된 사례가 있다”며 “차량이 전복되는 과정에서 운전자는 운동력에 의해 균형을 잃기 때문에 가속페달을 변함없이 100% 또는 99%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밟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EDR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또 ‘차량이 시멘트 벽을 뚫고 나가면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99% 밟았다’고 EDR에 기록된 사례를 소개하며 “시멘트 벽을 뚫고 나갈 때 충격과 에어백이 터져 얼굴을 강타하면서 정신을 잃어 자세의 균형을 잃어버린 운전자가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원고 측은 이 같은 급발진 의심 사례 모두 EDR에 ‘가속페달 변위량 99% 브레이크 OFF’라고 기록돼 있는 부분과 자동차 분야 전문 교수가 관련 토론회를 통해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차량 EDR에 예외없이 가속 페달 변위량이 ‘100% 또는 99%’로 나타나 있고, 브레이크 페달은 안밟힌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발언한 점 등을 들어 EDR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또 최근 차량 급발진 때문에 사망 교통사고를 냈다고 주장한 운전자에게 법원이 이례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사례도 언급됐다.
대전지법은 지난 15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56)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원고 측은 대전 사고 재판부가 ‘약 13초 동안 보도블럭, 화분을 충격하면서도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계속 밟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과실을 범하는 운전자를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을 강조하며 “13초 보다 2배 더 긴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는 더욱더 확실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전 사례 재판부가 차량의 속도가 시속 10.5km→37.3km→45.5km→54.1km→시63.5km→68km의 속도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가속페달변위량이 50% 이하로 계산된 사실을 근거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100%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강릉 급발진 의심 사례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는 27일 오후 이른바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의 차량 운전자 A씨(68·여)와 그 가족이자, 사고로 숨진 아이의 유족이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낸 7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두번째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이날 변론기일은 첫번째 변론기일에서 재판부가 원고 측이 제출한 사고기록장치(EDR)와 음향분석 등 2건의 감정신청을 모두 채택함으로써, 전문감정인을 신청해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6일 오후 3시 56분쯤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A씨가 몰던 소형 SUV가 배수로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동승자 이모군(12)이 숨지고, A씨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에 사고 당시 운전자 A씨가 지난 3월 강릉경찰서를 찾아 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한편 이 사고로 숨진 아이의 아버지 이씨는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국민동의 청원을 신청, 5만명 동의 요건을 충족해 국회 소관위원회인 정무위로 회부돼 제조물책임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또 강릉을 지역구로 둔 권성동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도 해당 사고 관련 언급을 통해 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운전자의 아들이자 숨진 아이의 아버지인 이모씨는 두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지금도 원인을 모른채 끊임없이 발생되는 급발진 사고 속에서 저희 사건을 통해 하나씩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힘겹게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