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미신고 없게 병원이 통보 의무
발의 뒤엔 국회-정부 소극적 태도
폐기되거나 계류… “과시용 발의”
여야, 뒤늦게 속도… 오늘 소위 열어
최근 병원이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가운데 국회에선 15년 전부터 관련 법안 20건이 제출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에서 관련 질의가 이뤄진 것도 한 번뿐이었다.
동아일보가 2019년 1월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숨진 지 7년 뒤에야 존재가 알려진 ‘투명인간 하은이’ 사례를 보도하는 등 이슈가 될 때마다 ‘보여주기식 입법 발의’가 이뤄졌지만 국회와 정부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 출생통보제, 관련 질의 단 1명
동아일보는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됐던 2008년 이후 15년 동안 의안정보시스템과 국회 회의록을 전수조사했다. 관련 법안은 △18대 국회 1건 △19대 3건 △20대 5건 △21대 11건 등 총 20건이 발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통보제 관련 논의가 회의록에 남은 건 2016년 4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일표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언급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홍 의원은 “병원에서 의무적으로 통지하는 안이냐”고 물은 뒤 “기존 법안과 여러 문제가 잘 조율될 필요가 있겠다. 생활 법률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도록 잘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 발언을 했다. 이날 회의를 끝으로 19대 국회가 임기 만료되며 관련 법안 3건도 자동 폐기됐다.
2021년 1월에도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8세 딸을 살해한 뒤 방치한 사건이 발생하자 국회에선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11건 중 6건은 아직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도 이슈가 될 때마다 2018년, 2019년, 2022년 등 여러 차례 출생통보제 도입 방침을 밝혔지만 세부 논의에 들어가면 소극적 의견을 반복했다. 2020년 국회 법사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법무부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과잉 규제가 될 수 있고 외국에서 출생한 아동에 대한 입법 공백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보건복지부는 “출생 통보로 인해 출산 사실이 드러나는 걸 꺼리는 여성이 의료기관 외에서 출산하는 경우 산모와 영아의 생명과 건강에 위협이 되는 점이 우려된다”며 “보호출산제 도입 없이 출생통보제 도입만을 규정하는 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 국회 ‘출생통보제’ 처리 가닥
15년 동안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여야는 최근 출생 미신고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잇달아 드러나자 뒤늦게 출생통보제 도입을 두고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야는 출생통보제 도입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룬 상태다. 여야는 28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출생통보제 도입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병원에서 출산 기록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달하면 심평원에서 이를 지자체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28일 소위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2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찰은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안 된 사건 12건 중 생사 확인이 안 된 4건을 집중 수사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인터넷을 통해 만난 상대에게 신생아를 넘겼다”고 한 경기 화성시 10대 미혼모 사건과 관련해 친모로부터 “아이를 넘겨받은 이들이 강원에 살고 있는데 조만간 인천으로 이사 간 후 출생신고를 하겠다고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다만 출생신고가 이뤄진 흔적은 못 찾은 상태다.
2019년 경기 수원시에서 출산한 외국인 친모와 영아의 행방도 확인 중이다. 경찰은 영아 예방접종 당시 친모와 함께 있었던 30대 외국인 남성의 신원을 먼저 특정하고 친모와의 관계를 조사 중이다. 또 2015년 경기 안성시에서 태국과 베트남 국적 불법 체류자로부터 태어난 영아 2명의 생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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