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5·31 교육개혁이 한국 교육에 미친 영향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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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
5·31 교육개혁은 한국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겨냥한 대규모 개혁이었다. 그래서 초중등 교육, 고등교육, 평생 직업교육 및 인프라 등 교육 전 분야에 엄청난 충격과 영향을 미쳤다.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5·31 교육개혁도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어떤 개혁은 의도대로 잘 진척돼 좋은 열매를 맺었는가 하면 어떤 건 변용, 퇴행, 무산되기도 했다. 몇몇 개혁은 후속 조치가 마땅치 않아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뒤이은 정권의 적극적 관심과 지속적 관리 및 교육생태계 변화에 대한 정책당국의 탄력적 적응이 필수적이다.

많은 이가 한국교육은 아직도 5·31 교육개혁의 틀 속에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5·31 교육개혁의 몇몇 주요 개혁과제들의 영향력을 평가해보자. 우선 5·31 교육개혁의 표제어 중 하나였던 ‘교육재정 GNP 5% 확보’는 이후 교육예산 책정 기준이 돼 공교육 투자 확대에 기폭제가 됐다. 그 결과 2019년 현재 초중등 학생 1인당 교육비가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높은 국가가 됐다. 그러나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초중등교육에 투자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그대로 유지되는 바람에 초중등교육에는 과잉 투자되고 있다. 반면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에 대해선 과소 투자되는 불균형이 일어났다. 현 시스템의 전면 재검토가 시급하다.

5·31 교육개혁의 주요한 성과 중 하나는 교육 관계 법령체계를 학교 급별 특성에 맞도록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으로 개편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존의 국가중심적 교육체계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특히 교육 주체의 자율이 중시돼야 하는 만큼 고등교육법 체계는 시대 상황의 변화에 맞춰 대학 자율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정될 필요가 있다.

5·31 교육개혁 과제 중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사업은 교육 정보화, 학교운영위원회 제도 및 초등영어교육 등이다. 이 과제들은 각각 정보화, 민주화 및 세계화의 간판 사업들로 역대 정권에서 비교적 잘 관리됐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을 위해 초기부터 집중적인 예산을 투자한 부문으로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는 이 부문에서 세계 최정상 국가가 됐다. 학교운영위원회 또한 권위주의적 위계 속에 갇혀 있던 학교 체제를 민주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1997년 어렵게 출범한 초등영어는 일본보다 20년을 앞섰다. 아직도 진행 중인 세계화의 숨은 첨병이다.

끊임없는 사회적 논란을 빚었으나 한국교육의 미래를 위해 불가결했던 개혁과제들은 학교생활기록부 도입, 대학평가와 재정지원 연계 강화 등이다. 종합생활기록부(1996년 8월 학교생활기록부로 명칭 변경)는 5·31 교육개혁안의 핵심 요소였다. 대학입시에서 필수 전형 자료로 활용함으로써 단순히 교육의 결과(입시 성적)만이 아니라 학습 과정이 입학 사정에서 중요한 전형 요소가 되도록 유도했다. 종합생활기록부의 입시 전형 활용은 입시제도와 학교 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킴과 동시에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대학평가와 재정지원 연계 강화는 학술연구의 일류화를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후 BK21 사업으로 구체화했고, 지속적 노력으로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대학평가와 재정지원 연계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향후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방식을 블록 펀딩 방식으로 바꿔 대학의 자율성 훼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양적 평가에 치중한 대학평가를 질적 평가 체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직업교육 및 평생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다. 5·31 교육개혁은 고등학교 단계 직업교육의 다양화, 전문대학, 개방대학, 기능대학의 직업교육 활성화를 통해 일반교육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직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경로를 개발했다. 역대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했다. 일반 숙련이 아닌 특정 숙련 중심의 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복지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학력 간 임금 격차 축소 등 사회적 여건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교육과 이를 둘러싼 다른 사회경제적 제도 간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직업교육 목표 달성이 어렵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간의 협력과 조정 부재 또한 평생, 직업교육의 착근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교육복지는 5·31 교육개혁 외전이다. 당시 교육개혁위원회와 별도로 필자와 교육부가 창안하고 주도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교육 소외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노력이 교육복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몇 번의 정권교체에도 이어지고 있다. 1997년 TV로 첫 전파를 탄 EBS 수능 방송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당시 필자는 교육부총리였다) 교육부와 EBS가 함께 노력한 끝에 인터넷 방송으로 탈바꿈하며 실효성을 높였다. 어렵게 출발했던 대안학교도 이후 다양화, 특성화돼 일부 학교는 최근 귀족학교 논란까지 빚을 정도가 됐다.

5·31 교육개혁이 청사진과 방안을 제시했지만 한국교육의 대표적 쟁점 과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사교육비 경감, 지방 교육 자치제 개혁, 유아교육의 공교육 체제 확립 등은 아직도 미해결의 장에 머물고 있다. 이제 교육적 쟁점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사교육비의 증가는 단순히 공교육의 실패뿐 아니라 학부모의 강한 교육열, 한국 사회경제의 불평등구조, 학벌주의, 임금 격차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교육 영역 내에서의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질적인 면에서 교육의 성패를 가름하는 인성 및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과정은 5·31 교육개혁에서 일부 제시됐지만 입시라는 거대한 파도에 계속 뒤로 밀렸다. 그것은 이제 미래의 교육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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