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일대 집중호우가 쏟아진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한 다가구주택 앞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집주인 한모 씨(86)는 “바가지로 아무리 퍼내도 물이 계속 차올라 이러다 큰일 나는 줄 알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낮 12시 49분경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인 이 주택 반지하 창고에는 배수관에서 흘러넘친 빗물이 유입되며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 집주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이 펌프차 1대를 동원해 간신히 물을 빼낼 수 있었다.
이 주택은 지난해 8월 폭우 피해로 50대 여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있어 이 주택과 인근 주택에는 물막이판(차수판) 등 침수 대비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주택 인근 반지하에 거주하는 박모 씨(52)는 “지난해 폭우 때 피해가 없어 굳이 차수판까지 설치해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옆집에서 물이 차오르는 걸 보니 미리 대비를 안 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 잇따른 침수 피해…2명 숨져
이날 전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수도권에서는 피해가 잇달았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청소년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29일 오후 2시 55분경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장호원교 인근 하천에서 수영을 하던 A 군(17)이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것. 경찰은 A 군이 불어난 하천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전남 함평군에서 비 피해를 막기 위해 수문을 살펴보다가 27일 실종됐던 수리시설 관리원 오모 씨(67·여)도 이틀 만인 이날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침수 피해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에 있는 서대문경찰서 교통센터가 침수돼 센터 내부에서 사용하는 무전기가 일시적으로 먹통이 됐다. 센터에서 10m가량 떨어진 도로 인근에서 치솟아 오른 물이 교통센터 내부로 들이닥친 것이다.
상습 침수지역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도 빗물받이가 쓰레기에 막혀 도로 일부가 침수됐다.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맨홀에서는 빗물이 역류했고, 남산1호터널 한남대교 방향 도로가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 당국에서 출동하기도 했다. 서울시와 소방 당국은 이날 오후 5시까지 빗물받이 배수 등 모두 198건의 안전 관련 조치를 취했다.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경기 화성시 마도면 송정리에서는 이날 오후 2시 반경 주택 옹벽이 무너져 안전조치가 이뤄졌고, 광주시 반지하 주택 6가구는 물에 잠겨 배수 작업을 벌였다. 고양시 일산동구 자유로 장항나들목 인근에선 승용차가 미끄러지며 가로수를 들이받은 뒤 화재가 발생했지만 운전자가 바로 탈출해 큰 부상을 입진 않았다. 인천에선 이날 오전 10시 20분경 남동구 간석동에서 빌라 옆 약 1m 높이의 담벼락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
시간당 6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충남 서산과 태안에서도 화물차 2대가 물에 잠기는 등 침수 피해가 이어졌다. 충남소방본부에는 도로 침수와 가로수 쓰러짐 등 40건 이상의 신고가 접수됐다.
● 30일 남부지방 피해 예상…다음 달 3일부터 또 장마
29일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150mm 이상의 비를 내린 장마전선은 30일 남쪽으로 이동한다. 29일 저녁부터 30일까지 전라권과 제주에는 100~200mm, 많은 곳은 최대 250mm의 물 폭탄이 예보됐다. 시간당 30~60mm 수준의 강한 비인데 천둥과 번개, 돌풍까지 동반해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청은 “이미 27일까지 많은 비가 내려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또 폭우가 쏟아질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대비를 당부했다.
29일 오후 6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서울(중랑) 67.0mm, 경기 화성 79.0mm, 강원 춘천 104.0mm, 충남 태안 99.5mm 등이다. 29일 호우가 집중됐던 수도권 등 중부지방은 30일은 비가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음 달 3일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4, 5일엔 다시 전국에 장마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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