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막이판(차수판)을 설치하면 뭐 합니까. 하수구가 역류해 물이 차오르니 방법이 없더군요.”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유모 씨(74)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유 씨가 사는 주택은 2019년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기록적 폭우 당시 배수구에서 역류한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 유 씨는 “이웃 도움으로 겨우 목숨만 건졌는데 이후 빗소리만 들어도 잠을 설친다”며 “돈이 없어 반지하를 떠날 수 없으니 여름 동안이라도 지인이나 친척 도움을 받아 신세질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최근 전국에 폭우가 쏟아지며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하자 지난해 침수 피해를 겪었던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물막이판을 설치하거나 모래주머니를 쌓기도 하고, 유 씨처럼 임시 거처를 수소문하는 이들도 있다.
전날 침수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주민 일부는 이날 집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었다. 전날 주택 반지하 창고가 침수됐던 집주인 한모 씨(86)는 “업자를 불러 배수관을 수리하는 동시에 지하실을 전부 비우고 입구 주변에 가림판을 설치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주택은 지난해 8월 폭우 때 50대 여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에서 1km 거리에 있다.
인근 반지하 주민 최성호 씨(42)는 “폭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20만 원을 들여 미세하게 금이 갔던 창문 유리창을 교체했다”며 “물막이판이 아직 설치되지 않아 임시방편으로 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조치했는데 솔직히 걱정된다”고 했다. 다른 상도동 주민 이모 씨(70)는 “지난해 침수로 집이 다 잠겼다”며 “올해는 장마 기간 동안에만 집주인에게 지상층 방 하나를 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살림살이를 임시로 담아 둘 대형 비닐봉지 등을 구매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 사는 임모 씨(30)는 “지난해 여름 가전제품과 가구가 전부 침수돼 고생했다”며 “물막이판 설치를 알아보니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더라. 출장이 잦아 집을 비울 일이 많은 만큼 현실적 대안으로 대형 비닐봉지를 사서 침대 등을 덮어두려 한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집에서 집게 등을 들고 나와 집 앞 빗물받이를 직접 청소하기도 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민 박모 씨(56)는 “자치구에서 청소해주기만 기다리다가 집이 잠기면 누가 책임져주느냐”며 “물막이판도 없다 보니 불안해 폭우 전후에 시간을 내 빗물받이 안에 쌓여 있던 담배꽁초 등을 치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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