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30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래그랜느’ 작업장의 불이 켜진다. 직원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의 노트를 꺼내 성경 필사를 시작한다. 오전 9시가 되면 하나둘씩 하얀 방진복에 모자를 쓰고 제과제빵 작업장에 들어가 분주히 40여 가지의 쿠키와 빵을 만든다. 오후 4시 30분. 작업을 마친 직원들은 누가 할 것 없이 작업장을 깨끗이 청소한 후 퇴근한다.
보기엔 평범한 제과제빵 작업장. 하지만 ‘래그랜느’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자폐장애인들이 주요 근로자라는 점이다. 2010년 5월 31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래그랜느는 현재 자폐장애인 12명, 비장애인 제빵사 2명, 사회복지사 3명이 있다. 이 사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13년이 됐다.
남기철 대표(70)가 작업장을 꾸린 이유는 자폐성 장애 2급인 아들 범선 씨(41)와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성인이 된 자폐장애인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일반적으로 복지관의 재활센터나 보호작업장으로 가는데 장애인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시설 운영 원칙으로 인해 3년 이상 머물지 못한다. 당장은 작업장에 있지만 3년 뒤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 부모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작업장 개수도 자폐장애인의 수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갈 곳을 찾지 못하면 자폐장애인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된다. 그러면 수년간 교육과 훈련으로 개선된 증상들이 악화된다는 게 남 대표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막고자 래그랜느를 만들었다. 이곳 직원들은 ‘나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대다수가 10년 이상을 다녔다. 오랜 시간 일을 했기 때문에 반죽과 굽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일을 자폐장애인들이 한다. 호흡도 척척이다.
남 대표는 “예전에는 제대로 된 쿠키를 하나 만들려면 1000개를 버렸다”며 “지금은 아이들이 눈을 감고도 밀가루 반죽 3g을 정확히 떼어낸다. 이전에는 시간 개념이나 사회성이 없었다면 회사를 다니고 나선 무척 좋아졌다. 남들 눈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눈엔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폐장애인들은 집에 있어야 좋은 거 아닌가’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인데 오히려 정반대”라며 “발달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곳이 작업장이다. 부모와 분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집에 있으면 자폐 증상이 심해진다. 자다가 일어나서 부모를 때리기도 하고 집안 살림을 부술 때도 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일을 하면 그만큼 에너지를 쓰니 집에 가도 얌전히 잘 잔다”고 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출퇴근을 무척 좋아해요. 저희가 근무가 오전 9시 시작인데 직원들이 오전 8시 전에 출근을 완료해요. 그 정도로 밖에 나와 일하는 것을 좋아해요. 쉬는 날에도 ‘회사 왜 안 가냐’고 할 정도예요.”
남 대표는 자폐장애인의 작업장은 그들의 부모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작업장에 가 있는 6시간 동안 부모들은 쉬거나 다른 가족을 챙기거나 또는 생업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24시간 365일 장애인 자녀를 데리고 살면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며 “그들도 잠시 쉬어야 하지 않겠나. 또 형편이 어려운 가정일 경우 먹고 살기 위해 부모가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 그럴 시간이 없다. 그런데 아이들이 작업장에 있으면 그 시간 동안 자신들도 일할 수 있으니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토요일은 등산…28년간 지킨 약속
자폐장애인을 위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중에는 래그랜느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산에 오르거나 농장에 간다.
그는 1995년 여름부터 단 한주도 빼놓지 않고 매주 토요일에는 아들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코로나19 전까진 청계산을 올랐고 1년 전부터는 대모산을 오른다. 산행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고 두뇌를 자극할 수 있는 등산과 같은 운동이 매우 유익하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아내’ 때문이었다. 장애를 둔 엄마들은 쉴 시간이 없다. 아이가 자다가 일어나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면 새벽 한 두시에도 일어나 아이의 입을 틀어막은 채 업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24시간, 365일을 보내야 한다. 그런 아내에게 토요일, 단 하루라도 쉬는 시간을 주자는 마음에 시작된 산행이었다.
그렇게 ‘밀알천사 산행’이 시작됐다. 남 대표는 “산행에 참석하는 아이들은 ‘천사’라 부르고 그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자원봉사자들을 ‘짝꿍’이라고 부른다”며 “사람이 많으면 천사와 짝꿍 40명 정도가 참여한다”고 말했다.
산을 오르던 천사 중 한 명인 태희(17) 양은 초반에는 청계산 입구부터 “가지 않겠다”며 하며 소리를 쩌렁쩌렁 지르는 아이였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산을 열심히 오르는 아이다. 태희 엄마는 “이전에는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옷이 흙투성이가 됐지만 이제 태희가 스스로 바위 위에 매트를 깔고 앉는 ‘깔끔쟁이’가 됐다”며 달라진 딸의 모습에 감탄했다.
민성 군(18)은 산에 오르기 전엔 몸집이 컸지만 산행을 시작한 후 날씬해지고 건강해졌고 성현 군(13)은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만 가도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이제는 산에서 야생화를 관찰하며 산에 오르는 걸 즐기는 아이가 됐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이들의 부모들이었다. 세상에 혼자일 줄 알았는데 의지할 곳이 생긴 것. 이들은 “아이들이 산에 오른 후 나 역시 달라졌다”며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주시는 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험한 길은 내가 가면 돼…앞으로 우리 아이들 편하게 오길”
남 대표의 마지막 바람은 자신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자폐장애인들이 지낼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남 대표가 말한 시설은 아이들이 밥만 먹고 자는 곳이 아닌, 일하고 여가를 즐기며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농장에 가는 것도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남 대표는 “자폐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은 ‘나 죽으면 앞으로 우리 애는 어쩌나’다. 그래서 제일 바라는 것이 ‘시설’이고 그다음이 ‘작업장’이다”며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런 걱정 없이 살게 하는 게 내 마지막 바람이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폐장애인을 향한 정부의 관심과 작업장 및 시설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해 주는 것이라고 남 대표는 말한다. 남 대표는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들을 향한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며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몇 년 뒤 정부가 바뀌면 도로 ‘리셋’이다. 우리가 아무리 소리를 높여도 들어주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이 장애인을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지체장애인, 시각‧청각 장애인, 발달장애인 등 각기 다른 장애를 갖고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며 “그런데 발달장애인 작업장을 만들 때 점자 안내표지 등과 불필요한 시설을 갖춰야 작업장으로 허가를 해준다. 심지어 화장실에 아기 기저귀 교환대도 설치해야 한다. 작업장 하나를 차리는데 규제가 이렇게 심하니 건물주들이 적극적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남 대표는 멈출 생각이 없다. 앞으로 남겨질 자폐장애인들을 위해 계속 달릴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길을 터주는 사람은 험난한 인생을 삽니다. 지금 저와 우리 범선이가 그 길을 간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희가 단단하게 그 디딤돌을 만들어 놓을 테니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편하게 그 길을 와줬으면 합니다. 그냥 아이들이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 말고 바라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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