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임대아파트를 저렴하게 재임대
지난달 50가구 모집에 506명 몰려
지역 소멸 위기 해결책으로 각광
나주-순천 등서도 벤치마킹 나서
“깔끔하게 단장한 집에서 이틀 밤을 보냈는데 아직도 꿈만 같아요.”
3일 전남 화순군이 청년·신혼부부를 위해 마련한 1만 원 임대주택 첫 입주자인 김모 씨(25·여)는 5일 “처음으로 동생과 나만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생겨 너무 좋다”고 말했다. 광주의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는 김 씨는 “전세로 살 때는 불안불안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벽지, 장판, 싱크대, 찬장까지 모두 새것으로 교체해줘 마치 신혼집에서 사는 느낌”이라고 좋아했다.
월 1만 원의 임차료만 내면 20평 임대아파트에서 최장 6년 동안 살 수 있는 전남 화순군의 ‘인구 늘리기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1만 원 임대주택 사업이 첫 결실을 맺으면서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전국 자치단체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 최장 6년까지 살수 있는 월 1만 원 임대 아파트
1만 원 임대주택 사업은 화순군이 기존 임대 아파트 사업자에게 전세로 집을 빌려 청년과 신혼부부 등에게 월 1만 원을 받고 재임대해주는 사업이다. 취약계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고 인구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서 추진했다. 지난달 1차 입주자로 50가구를 모집했는데 506명의 희망자가 몰렸다. 화순군은 적격 심사에 통과한 442명 중 추첨을 통해 최종 입주자를 선정했다.
이들은 방 2개에 화장실, 거실, 주방, 베란다 등을 갖춘 20평형(전용면적 49.9㎡) 아파트에 이달 말까지 입주할 예정이다. 월세가 1만 원, 보증금(예치금)이 88만 원이다. 월세 외에 기본적인 아파트 관리비, 공과금 등은 개인 부담이다. 원할 경우 2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며 최장 6년까지 살 수 있는 조건이다.
1만 원 임대아파트가 가능한 것은 자치단체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화순군은 민간 임대아파트 1500가구 가운데 비어 있는 집을 가구당 4800만 원에 전세 임차했다. 입주 자격은 화순군에 전입신고를 하고 실제 거주하는 청년(만 18∼49세)이나 결혼 7년 이내 신혼부부다. 화순군은 9월 50명의 입주자를 추가 모집하는 등 매년 100가구씩 4년간 총 400가구의 1만 원 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400가구 전세보증금을 내기 위해 화순군이 들이는 예산은 192억 원이다. 전세보증금은 없어지는 돈이 아니어서 실제 필요한 예산은 이자 등 관리 비용 정도다. 화순군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4월 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제도 신설 협의를 마쳤고 관련 조례도 제정했다.
● 지역 소멸 위기 대응 방안 주목
이 사업이 새로운 지역 소멸 위기 대응 방안으로 떠오르며 전국 지자체에서 앞다퉈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와 순천시, 광주 동구청을 비롯해 강원, 경남 거창군, 전북 남원시 등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며 화순군을 방문했다. 지난달까지 30여 곳의 자치단체가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현장 방문, 관계자 면담 등 벤치마킹에 나섰다는 게 화순군의 설명이다. 나주시는 이르면 9월부터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으며 현재 보건복지부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다.
화순군은 1만 원 아파트가 청년 인구 유입·정착에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만 원 아파트 1차 50가구 입주자들의 출신 지역과 연령대 현황을 분석한 결과 타 지역 출신이 38%, 35세 이하가 84%로 나타났다. 입주자 중 화순군 거주자가 31명이었으며 광주 출신 16명, 전남 목포·영광과 서울 출신 각 1명이었다. 또 연령대는 26세 이상 30세 이하 16명, 31세 이상 35세 이하 14명, 25세 이하 12명으로 조사됐다.
조영현 화순군 공동주택팀장은 “일단 젊은층 인구 유입과 주거 안정 효과를 확인했다”며 “화순읍내 노후 임대아파트 공실률을 낮추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상지원 확대해 지방 인구절벽 막아야”
구복규 전남 화순군수 인터뷰 청년들에겐 주거 문제가 가장 심각 지자체 예산 한계 분명, 정부 나서야
“파격적인 지원책만이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다.”
구복규 전남 화순군수(68·사진)는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출산 지원책 정도로는 빨라지는 인구 절벽,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없다”며 “가장 시급한 게 아이 낳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래서 서둘러 내놓은 정책이 ‘1만 원 임대주택 지원사업’”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구 군수와의 일문일답.
―‘1만 원 임대아파트’를 추진한 이유는….
“‘인구 절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화순군 전체 인구가 6만2000명인데 지난해 178명이 태어난 데 비해 4배가 넘는 785명이 숨졌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9%에 달해 지방 소멸에 대비하고 침체된 군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였다.”
―1차 경쟁률이 치열했다.
“4년 동안 매년 100가구씩 지원하기로 하고 올해 1차분 50가구에 대해 접수를 마감한 결과 1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신청자가 폭주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주거 문제가 가장 힘든 난관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보완할 점은 없나.
“1차 모집 때 신혼부부 20쌍이 신청을 했는데 추첨 결과 아쉽게도 한 쌍도 입주권을 얻지 못했다. 사업 취지를 살려 하반기 2차 모집 때는 신혼부부를 우선적으로 뽑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대주택 지원을 시작으로 일자리 지원, 무상교육까지 단계별로 절차를 밟아갈 예정이다.”
―예산 압박이 심하지 않나.
“400가구 전세보증금을 내기 위해 들이는 예산은 192억 원이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화순군의 올해 총예산이 7500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큰 부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대보증금은 임대 기간이 끝나면 환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런 공공임대 사업은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지방 소멸은 나아가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무상에 가까운 주택, 일자리, 교육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자치단체의 재정 여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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