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부장 박재억 검사장)가 5일 발간한 ‘2022 마약류 범죄 백서’는 국내 마약 문제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난해 붙잡힌 마약사범은 1만8395명으로 4년 동안 45.8% 급증하며 역대 가장 많았다. 특히 마약사범 10명 중 6명(59.8%)은 30대 이하 청년층이었고, 10대 마약 사범은 2018년의 4배가 넘는 481명이나 검거됐다. 4년 전(143명)의 3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검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다크웹(접속하려면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하는 웹사이트), 가상화폐를 통한 ‘비대면 거래’가 보편화되면서 청소년들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마약 가격이 저렴해진 것 역시 확산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렇게 심각해진 마약 문제의 진단과 해법을 듣기 위해 검찰 재직 시절 마약 수사 전문가로 활동했던 김희준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를 올해 5월 17일과 최근 만났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우리는 마약 청정국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는 말부터 꺼냈다.
―한국의 마약 문제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나. “마약 청정국 복귀 ‘골든 타임’의 끝자락에 놓여 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 미만인 나라를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2016년 이미 25명을 넘긴 뒤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약 문제는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고 지내왔다. 마약은 대표적인 암수범죄(暗數犯罪·범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범죄)다. 마약 사범이 많게는 100배까지 퍼져 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상태다. 2018년 ‘버닝썬 사건’ 당시 경찰이 한 달간 물뽕을 집중단속 했더니 1000명 넘게 검거되지 않았나. 숨어 있는 마약범죄가 굉장히 많다는 얘기다. 마약범죄의 구조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마약범죄 구조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10년 전만 하더라도 마약범죄의 주된 연령층은 40대였다. ‘뽕쟁이’라고 하는 마약사범들끼리 거래하고 투약했다. 2021년부터 20대로 내려왔고, 10대 마약사범은 10년 동안 11배로 늘었다. 마약범죄가 굉장히 연소화됐다.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30분 만에 마약을 주문한 여중생을 어머니가 신고하는 사건도 있지 않았나. 최근엔 15세 미만까지 (마약사범 연령이) 내려가고 있다. 굉장히 위험한 징후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의 발달로 청소년들이 마약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상황을 대처하지 않으면 임계점을 넘어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올 것이다.”
―마약값도 굉장히 저렴해진 것 같다. “필로폰 1회 투약분이 2~3만 원 수준까지 내려왔다. 검사 시절 북한산 필로폰이 많이 들어왔는데, 순도가 높아서 10만~15만 원(1회 투약분)으로 비쌌다. 최근엔 순도가 떨어지고 불순물이 많이 섞인 동남아산이 들어오면서 필로폰이 통닭 한 마리 값이니, 피자 한 판값이니 하는 얘기까지 나온다. 가격이 저렴해지니 청소년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배우 유아인은 대마와 코카인은 물론, 의료용 마취제 ‘케타민’을 투약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처럼 신종 마약류의 유통도 늘고 있는데,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인가. “펜타닐이 가장 심각하다. 펜타닐은 한두 번만 투약해도 중독되고 적은 양만 투약해도 사망할 수 있다. 미국도 펜타닐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 않나. 미국에선 길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줍지 말란 말이 있다. 펜타닐 가루가 지폐에 묻어 있으면 지폐를 펴는 순간 펜타닐 가루가 공중에 날리면서 코로 흡입돼 사망할 수도 있다. 한국도 펜타닐을 너무 쉽게 처방해준다. 청소년들끼리 펜타닐을 잘 처방해주는 리스트를 만들어 병원을 다니면서 처방전을 받아 대량으로 구매해 친구에게 팔기도 한다. 앞으로 펜타닐 암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크다. 청소년들이 많이 투약하는 다이어트약도 문제다. 여기엔 펜타민이란 식욕억제제가 들어 있는데,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성인들이 펜타민을 처방받기 위해 청소년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병원을 다니며 꾀병을 연기하라고 시킨 사례가 있을 정도다. 펜타닐이나 다이어트약을 잘 처방해주는 병원은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open run)’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권은 문재인 정부가 검찰 수사권을 축소해서 마약범죄가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검찰 수사권이 축소되면서 단속의 효율성이 떨어진 건 맞다. 500만 원 이상 밀수 사범만 검찰 수사가 가능한데, 마약 사건이란 게 수사를 해봐야 규모와 실체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마약 공급부터 투약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무시하는 입법을 했다.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검경 간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수사해야 한다. 다만 검찰 수사권 축소와 마약사범 증가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마약범죄가 늘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마약 유통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른바 ‘n번방’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디지털 성범죄는 경찰과 수사관이 신분을 숨기고 들어가는 ‘위장 수사’가 가능해졌다. 마약 수사도 그런 기법을 도입하도록 국회가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단속과 처벌을 전쟁하듯 강화하면 마약 사범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마약사범들의 ‘위험수당’이 올라가 마약이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마약을 ‘범죄’로만 보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마약은 본인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약에 중독되면 도파민 분비가 급증하고 뇌의 보상체계가 망가져 본인도 컨트롤할 수 없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 즐겁지만, 중독자들은 마약을 해야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뇌신경의 보상체계가 파괴되며 마약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미국이 치료와 재활에 중점을 두고 ‘약물 법원’까지 운영하는 이유다.”
―미국은 약물 법원을 어떻게 운영하나. “투약자에 한해 재활 의지가 있다면 일단 약물 법원으로 보내고 법원과 연계된 병원에서 1년간 치료를 받도록 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기소를 아예 안 한다는 것은 아니고 1년 동안 단약 의지를 지켜본 뒤 결정한다는 취지다. 우리는 무조건 교도소에 가두고 처벌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만, 미국은 일단 치료받을 기회와 제어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주는 것이다. 마약을 범죄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은 교도소가 마약범죄 네트워크를 더 강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교도소 안에서 마약 사범들을 철저히 분리하고 연결을 차단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인적 네트워킹이 오히려 강해진다. 단순 투약자가 교도소에 수감되면 새로운 공급 루트를 알게 되고 본인이 직접 공급자가 되기도 한다. 출소하면 마약 사범들과 다시 연결돼 재범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교도소에서 별다른 재활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니 네트워크를 계속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출소하면 마약과 관련된 용어만 들어도 뇌가 흥분하게 된다. 몇 년간 수감만 해놓으니 치료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약 근절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무엇인가. “나도 검사 시절엔 수사와 단속이 제일 중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 교육이고, 두 번째는 치료와 재활이다. 세 번째가 수사 단속이다. 형사적으로 엄벌에 처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든다는 논리가 입증된 적도 없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약물 교육은 하지만 마약 교육은 전무하다. 최소한 초등학교부터 마약을 예방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마약 음료 사건 피해자들도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는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음료를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마약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대응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특별수사본부는 여러 부처 사람들이 다 모이는 파견 조직이라 효율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일정 기간 지나면 없애야 하는 임시 조직이기도 하다. 예방 교육부터 수사, 단속, 처벌과 치료, 재활까지 종합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기능을 컨트롤타워에 부여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마약 중독자 재활 시설을 만들려고 해도 주민 반대가 심하다고 한다. “정부가 마약 치료·재활병원으로 정부가 지정된 곳은 21곳인데 실제 운영되는 곳은 인천의 참사랑병원과 경남 창녕의 국립부곡병원 2곳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이 워낙 적다 보니 다른 병원들은 마약 중독자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정부가 병원과 의사들에게 과감하게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 너무 미약하게 대응하고 있다. 도심 병원이 어렵다면 도시와 떨어진 곳에 별도의 치료·재활시설을 짓는 게 차라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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