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앞에서 만난 입주민 A 씨는 전날 집중호우로 단지 일부가 침수된 것을 두고 분통을 터트렸다.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는 그는 “신축 아파트를 어떻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안전사고가 또 발생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입주가 시작된 지 4개월 된 이 아파트는 지난달 이미 한차례 지하주차장에 물고임이 발생한 바 있다. 11일에도 서울 지역에 시간당 70mm 내린 폭우로 단지 내 보행자길과 커뮤니티 시설 등에서 물이 성인 발목 높이까지 차올랐다. 주민들 사이에선 ‘침수 자이’, ‘침수가 옵션이냐’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입주민 “신축 아파트 물난리 상상 못해”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다른 입주민도 “신축 아파트에서 물난리가 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주민 천귀일 씨(60)는 “입주민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합과 시공사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날 폭우에 침수된 신축 아파트는 이곳 뿐이 아니다.
인천 서구 백석동의 검암역로열파크씨티푸르지오 아파트 역시 전날 오후 3시경 지하주차장과 공동현관, 엘리베이터 등이 물에 잠겼고, 계단에서도 물이 쏟아졌다. 2개 단지 전체 4800여 채 규모인 이 아파트는 지난달 30일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12일 찾은 아파트 단지에는 지하주차장과 공동현관 입구 등 곳곳에 침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파트 관계자는 “지하주차장과 이어진 외부 지대가 높은 편인데 순간적으로 비가 많이 오면서 물이 흘러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한 입주민은 “비가 짧은 시간에 많이 왔다고 하지만 다른 인근 아파트 단지들은 괜찮았다”며 “입주가 시작된 지 2주 밖에 안 된 아파트에서 장마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침수피해가 생기니 걱정”이라고 했다. 입주민들 사이에선 아파트 이름을 패러디해 ‘물이 흐르지오’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 전문가 “배수시설 문제 가능성”
논란이 되자 아파트 시공사들은 “단시간에 국지적으로 비가 쏟아지면서 부분적으로 침수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를 시공한 GS건설 관계자는 “전날 침수 피해가 발생한 커뮤니티 시설은 외부와 높이 차이가 없이 설계돼 폭우에 취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단지가 저지대에 있어 물이 고인 것이며 부실 시공은 아니다. 배수관을 더 큰 것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검암역로열파크씨티푸르지오를 시공한 대우건설 관계자는 “커뮤니티 시설에 설치된 빗물받이 용량을 초과하는 폭우가 단시간에 쏟아져 넘침 현상이 발생했다”며 “1차 복구를 완료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보완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해당 아파트들이 위치한 지반이 낮은데다 배수시설까지 물의 흐름과 어긋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배수시설 용량 부족이나 배수로 설계가 잘못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전날 폭우로 부산 사상구 학장천의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된 60대 여성은 전방위적인 수색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또 호남지역에선 12일 새벽 폭우가 쏟아지며 오전까지 일부 지역의 강수량이 150㎜를 넘었다. 추가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강한 비바람으로 일부 가로수가 쓰러졌고 도로 및 주택 침수 등의 피해가 이어졌다.
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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