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서 쓰러진 노인 둘 살린 의인 “아유, 당연한 일 한 건데”[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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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7월 20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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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전북 부안의 한 사우나. 온탕 안에서 목욕 중이던 한 노인이 탕 안의 난간을 붙들고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남탕 안에는 사람도 몇 명 없었고 그들도 노인과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노인은 계속해서 몸을 흔들었고, 처음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사람은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부안지구협의회 부령봉사회 소속 봉사원 박형래 씨였다.

박 씨가 살펴보니 노인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박 씨는 다급히 노인을 탕 밖으로 옮기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박 씨 덕분에 노인은 1분여 뒤 정신을 차렸고 가족에게 연락이 닿아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 남짓 지난 5월 12일. 지난 3월 노인이 쓰러졌던 곳과 같은 곳에서 다른 한 명의 노인이 건식 사우나를 하고 있었다. 노인은 사우나 안 나무 의자에 누운 상태였다.

이번에도 노인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박 씨였다. 박 씨는 황급히 노인을 업고 사우나 밖으로 나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노인은 이내 입에서 거품을 토해냈고 다시 숨을 쉬었다. 뒤이어 119가 도착하면서 노인은 생명을 건졌다.

두 달 사이 두 사람 생명 구한 의인
두 달 사이에 두 명의 노인이 같은 사우나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이들의 생명을 구해낸 사람은 박 씨였다.

3월의 상황에 대해 박 씨는 “그 분(쓰러진 노인)은 제 아버지의 후배이셔서 평소 아는 사이였다. 탕 안에 계셨는데 난간을 잡고 몸을 흔들고 계셔서 처음에는 운동을 하시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도 안 나오셔서 이상해서 살펴보니 정신을 잃으셨더라. 나중에 보니 운동을 하신 게 아니고 어떻게든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난간을 잡고 계신 거였다. 1분 정도 후에 정신이 드셔서 가족에게 연락했다”고 덧붙였다.

5월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 분도 평소 잘 알던 분이다. 처음에는 사우나 안에 혼자 계신 것을 봤다. 사우나 안이 넓지 않아서 내가 들어가면 불편해 하실까봐 안 들어가고 있었다. 나중에야 같이 사우나에 간 후배가 들어가자고 해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들어가서 보니 그 분이 누운 상태였는데 숨을 안 쉬더라. 후배가 그 분을 바로 업고 나왔고 나는 바로 심폐소생술을 했다. 나중에 입에서 거품이 나면서 숨을 쉬어서 119에 인계했다”고 부연했다.

사진=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제공
사진=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제공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심폐소생술 배웠으면”
심폐소생술로 두 명의 생명을 구한 박 씨의 사연을 알게 된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는 지난 6월 20일 부안읍 행정복지센터에서 박 씨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 자리에서 박 씨는 “평소 응급처치 교육을 받아 침착하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하더라도 지체 없이 나서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앞장 설 것”이라고 말했다.

두 달 사이에 심폐소생술로 두 명의 생명을 구한 박 씨지만 심폐소생술을 배운 것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박 씨는 지난해 전북지사 ‘재해구호전문 인력 양성교육’에 참여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이수했다.

그는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으면서 이걸 실제로 꼭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배우지는 않았다.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배운 것”이라며 “칭찬 받을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는 연거푸 별 일 아니었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막상 주변에서 실제로 사람이 쓰러졌을 때 지체 없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심폐소생술을 받는 사람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경우가 많아 선뜻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박 씨는 “다행히 그 분들은 갈비뼈 부상 없이 잘 깨어나셨다”면서 “옆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일이 벌어지니 뒷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 이후로 주변에 노인 분들이 계시면 유심히 지켜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 때부터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심폐소생술을 배웠으면 좋겠다.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10명 중에 3~4명 살릴 수 있던 것이 7~8명으로 늘고, 결국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 아니겠나”라고 강조했다.

사진=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제공
사진=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제공


“봉사는 어디에 자랑하려고 하는 것 아냐”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부안지구협의회 부령봉사회 소속 봉사원인 그는 평소에도 봉사를 생활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부안에 새로 생긴 부령봉사회에 들어간 그는 봉사회 동료들과 함께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부령봉사회는 지난해에 생겼지만 상위조직인 부안지구협의회는 47년째 지역 내의 독거노인, 취약계층 등의 집수리, 화재현장 지원 등을 돕고 있다. 지원금이 넉넉하지 않아 사비도 적지 않게 들어가지만 이들은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박 씨는 “처음엔 봉사라는 것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데 하다 보니 같이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면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슨 큰 이념이 있어서 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득을 얻거나 칭찬을 받겠다는 생각도 없다. 내가 지금 봉사를 할 수 있으니 하는 것이지 어디에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보람은 나 스스로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 두 명의 생명을 구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그 자리에서 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구했다는 긍지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더라도 당연히 또 그렇게 할 것이다. 내 눈앞에서 생명이 꺼져 가는데 보고만 있을 사람은 없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시종일관 덤덤하게 자신이 한 일이 대단하지 않다고 강조하던 박 씨가 유일하게 선행을 자랑하고 싶다는 사람은 손자 손녀들이었다.

그는 “손자, 손녀들이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1학년인데 주변에 ‘우리 할아버지가 좋은 일을 했다’고 자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뿌듯하다. 손자, 손녀들에게만은 자랑하고 싶다. 손자, 손녀들과 노는 것이 가장 큰 낙”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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