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돌이’ 이강인(22)이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13번째 코리안 리거가 됐다. 이강인이 5년간 누빌 파리생제르맹(PSG) 홈구장은 그에게 또 다른 의미로 특별한 장소다. 작고한 그의 스승 고(故) 유상철 감독이 이름을 날린 바로 그 장소다.
프랑스 프로축구 1부 리그 명문 클럽인 PSG는 이강인과 2028년까지 5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9일(한국시간) 공식 발표했다. 이강인은 PSG에 입단한 첫 한국 선수이자 역대 리그1에서 뛰는 13번째 선수가 됐다.
이팀은 ‘월드 클래스’ 공격수인 음바페와 네이마르가 뛰고 있는 곳이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6·인터 마이애미)가 지난 시즌까지 이 팀에서 뛰었다.
이강인은 등번호 19번을 달고 뛴다. 이적료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들은 2200만 유로(약 314억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적료의 20%(약 63억 원)는 이강인의 몫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PSG 구단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컬처PSG’는 이강인의 연봉이 400만 유로(약 57억 원)라고 전했다. 마요르카에서 받던 50만 유로의 8배다.
이강인은 구단과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팀 중 하나인 PSG에 합류해 기쁘다. 팀이 가능한 한 많이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나는 이기고 싶은 욕망과 갈증이 많은 선수”라면서 “양쪽 날개에서 뛸 수 있는 미드필더이고 공을 잘 다루는 기술이 있다. 팀 승리를 돕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스승이 이름 알린 ‘그무대’에 서다
“내게 건강한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강인이 경기를 현장에서 보고 싶다.” 2021년 6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유상철이 생전에 했던 말이다.
이강인이 PSG 선수가 되면서 스승과의 인연도 이어진다. 1998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에서 골을 터뜨린 유상철. 그가 득점한 장소가 바로 제자 이강인이 PSG 유니폼을 입고 뛸 파르크 데 프랭스다.
유상철은 이강인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날을 보기를 고대하다가 눈을 감았다. 이강인은 스승이 25년 전 이름을 빛냈던 그 무대에서 다시 한번 빛을 내게 됐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한국팀은 멕시코에 1대3 패, 네덜란드에 0대5 패를 당하며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등초유의 사태로 뒤숭숭했다. 남다른 각오로 조별리그 최종전에 나선 한국은 유상철의 골로 1대1 무승부를 거뒀다. 유상철 이름 석자가 널리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유상철은 2019년 10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2020년 12월 유상철의 췌장암 투병기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 ‘유비컨티뉴’에서 제작진은 유상철에게 ‘건강한 1주일이 주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했다.
유상철은 “강인이가 하고 있는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시간이 된다면, 그 1주일이 주어진다면”이라고 답했다.
유상철은 이강인을 만나 “경기도 보고 훈련도 보고 너 사는 것도 보고 싶었다”고 했고, 이강인은 “오시면 되죠. 건강해지셔서 오면 좋죠”라고 답했다. 유상철은 “대표팀 경기일 수도 있고, 다른 리그 경기일 수도 있고, 선생님이 치료 잘해서 경기 보러 갈게”라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유상철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유상철이 떠나던 날 이강인은 인스타그램에 “제 축구 인생의 첫 스승이신 유상철 감독님, 감독님은 제게 처음으로 축구의 재미를 알려주신 분이셨습니다. 제게 베푸셨던 은혜에 보답해드리기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셔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더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 제가 감독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꼭 지켜봐 주십시오”라고 글을 올려 다짐했다.
그리고 약 1년 뒤, 이강인은 보란 듯이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맹 활약했고, 이어서 2023년에는 세계 초일류 축구스타들이 뛰는 명문 클럽에 입단하게 됐다.
유상철이 업어 키운 6살 이강인
두 사람의 인연은 2007년 KBS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시작됐다. 유상철은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슛돌이팀 감독을 맡으며 재능 기부에 나섰는데, 이때 지도한 꼬마가 바로 이강인이다.
당시 이강인은 만 6세였다. 여섯살 이강인이 유상철 등에 업히면서 “뒤에서 태클 걸어요”라고 일러바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이강인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유상철의 추천으로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가 유소년팀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17세이던 2018년에 이 팀에서 1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2021년 8월 마요르카로 팀을 옮겼다.
이강인을 영입한 PSG는 홈페이지 첫 화면에 75초 분량의 1문 1답 영상을 포함해 이강인 입단과 관련한 게시물을 5개나 쏟아냈다. 이강인이 ‘어린이 축구’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인기를 누렸던 축구 신동(prodigy)이었다는 것도 소개했다.
PSG는 “한국 선수 중 최연소로 유럽 리그 1부 리그에 데뷔했다”며 “어느 위치에 있든 능숙한 왼발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낸다. 좁은 공간에서도 편하게 움직이고 공을 쉽게 다룬다”고 활약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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