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보건의료노조 파업]
환자 배에 관 꽂은채 중소병원 옮겨
민노총 보건노조 19년만에 총파업… 응급진료 차질 병원 15곳으로 늘어
의료재난 경보단계 ‘주의’로 격상
13일 오전 7시부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이틀간의 총파업에 들어갔다. 의료 현장에서는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 병원 문턱에서 발길을 돌리고, 병원과 병원 사이에 숨 가쁘게 환자가 이송되는 등 혼란이 현실화됐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고, 대통령실은 “정치 투쟁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간에 농양(고름)이 찬 28세 남성이 실려 왔다. 응급실 의료진은 환자의 배에 관을 꽂아 농양을 빼는 긴급 시술을 했지만 상태가 악화하면 패혈증으로 번질 위험도 있었다.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데 파업 때문에 가동 가능한 병상이 없었다. 결국 이 환자는 배에 꽂은 관을 그대로 단 채 인근 중소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관계자는 “옮겨진 병원에선 농양 배출 시술을 못 하기 때문에 다시 농양이 차오르면 우리 병원으로 재이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을 강행한 건 2004년 ‘의료 민영화 반대 파업’ 이후 19년 만이다. 이날 전국 145개 의료기관 소속 간호사와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인력 4만5000여 명(노조 측 추산)이 파업에 참여했다. 응급실 인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파업 참여가 제한된다. 하지만 일반 병상 근무 의료진이 파업에 참여하면 응급실까지 ‘도미노 여파’가 미친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응급실 진료에 차질이 생긴 병원은 최소 15곳으로 늘었다. 이 중 11곳은 중증 응급환자를 최종 치료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 혹은 권역외상센터였다.
같은 날 오전 당정은 국회에서 현안점검회의를 열고 총파업 대책을 논의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노조가 민노총 파업 시기에 맞춰 정부 정책 수립과 발표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불법에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부터 가동해온 의료기관 파업 상황점검반을 이날 중앙비상진료대책본부로 전환하고, 지방자치단체별 대책본부를 구성해 진료 차질에 대응하기로 했다.
이날 보건의료노조는 오후에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거리 집회도 열었다. 주최 측 추산 2만 명이 참가했다. 14일에도 서울 세종 부산 광주 등 4개 지역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노조는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 대 5로 인력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시행, 임금 10.73%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13일 오전 부산 서구 동아대병원 응급실 앞. 119구급차와 사설 구급차 여러 대가 비상등을 켠 채 줄지어 서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다급하게 뛰어다니며 환자를 들것에 실어 옮겼다. 코에 산소마스크를 쓴 한 중년 환자는 병원에 도착했으나 응급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시 119구급차에 실려 떠났다. 응급실 병상 39개가 포화상태라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부산 지역 응급실, 응급의료 마비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소속 의료인력 4만5000여 명이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지방 병원 응급실부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대체 병원을 찾기 어려운 지역 거점병원들이 제 기능을 멈추자 인근 병원들까지도 응급의료가 마비됐다. 파업은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의료 인력들이 참여했다.
동아대병원은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대상이 아니지만, 인근 부산대병원이 파업하면서 받지 못하게 된 응급환자들을 떠안게 됐다. 이날 동아대병원 응급실은 보호자 대기실까지 환자들이 들어찼다. 몇몇 환자는 복대를 찬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고, 병상이 없어 의자에 드러누운 환자도 있었다. 폐부종을 앓는 80대 아버지를 모시고 이 병원을 자주 찾는다는 50대 여성 김모 씨는 “환자들이 보호자 대기실에서 대기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인근 다른 병원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고신대복음병원 응급실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병상 24개가 다 찼고, 환자 3명이 추가로 대기 중이었다. 해운대구 해운대백병원도 병상 23개 중 22개를 사용 중이었다.
부산 지역 응급 의료진들은 특히 소아 응급환자 진료 차질을 크게 우려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평소에도 부산에선 소아 응급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없어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으로 보내는 일이 잦은데, 이번엔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마저 파업으로 사실상 운영이 중단돼 걱정된다”고 했다.
● 포화, 또 포화… 35km 밖 병원까지 여파
파업의 ‘풍선 효과’는 전국에서 나타났다. 서울에선 12일 오후 70대 노인이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해 119에 신고했지만 파업 중인 국립중앙의료원과 한양대병원 응급실은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1시간 10분 만에 영등포구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13일 오전 7시경엔 자전거 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60대 환자가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로 이송됐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한양대병원 응급실로 재이송됐다. 하지만 여기서도 입원하지 못했고 또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수술 가능 병원이 적은 비수도권에서는 파업의 여파가 더 극명했다. 이날 오후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은 “응급실 소아 구역과 소생실을 제외한 모든 병상이 가득 찼다”고 공지했다. 중구 충남대병원이 보건의료노조 파업으로 응급입원 병동을 축소 운영하자 건양대병원으로 환자가 몰린 것. 충남대병원은 이날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에게 ‘입원 진료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안내한 뒤 동의한 경우에만 들여보냈다. 충남대병원 관계자는 “우리 응급실엔 하루 평균 120∼130명의 환자가 오는데, 오늘은 절반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와 전남은 권역 내 중증 응급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4곳 가운데 목포한국병원을 제외한 3곳이 전부 파업으로 진료 차질을 겪었다.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응급실은 인근 병원들에 ‘환자 전원(轉院·병원을 옮김)시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전남 순천시 성가롤로병원 응급실은 경증 환자를 퇴원시키거나 돌려보냈다.
전북도 상황이 비슷했다. 전주시 전북대병원이 파업 여파로 12일 ‘산부인과 응급 입원 및 수술 불가’를 통보한 데 이어 13일엔 응급 투석 환자도 받지 못한다고 고지하자 약 35km 떨어진 익산시 원광대병원까지 여파가 미쳤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중앙응급의료센터 병상 상황판에는 원광대병원 응급실 병상 31개가 가득 찼고 대기 환자가 25명이나 더 밀려 있다고 표시됐다. 비수도권의 한 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평소에도 지방 응급수술은 의료진 부족 탓에 위태로운데 이번 파업으로 한계가 드러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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