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1시30분 전북 익산시 용안면 용안초등학교 강당. 연일 쏟아진 폭우로 금강 하류에 있는 산북천이 범람하자 이곳으로 몸을 피한 용두마을 주민 김미숙씨(61·여)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92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혹시 몰라 두꺼운 이불과 베개만 챙겨서 급하게 나왔다”며 “40년 동안 농사짓고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3000평 규모의 수박 농사와 2000평 규모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밤낮으로 일하며 자식처럼 애지중지 수박을 키웠는데 이번 비 피해로 비닐하우스가 물에 다 잠겼다”며 “피해 금액만 5000여만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마을 전체 논·밭, 축사에 다 물이 차올라 완전히 바다가 됐다”며 “냉장고, 농가용 플라스틱 깔판 등이 둥둥 떠다니고 가축들도 고립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용안초에는 익산시 공무원 20여명이 상주해 주민들을 살폈다. 바닥에는 담요가 깔려 있었고 생수, 두유, 컵라면 등 비상식량도 준비돼 있었다.
낮 12시가 되자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급식실로 이동했다.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아침과 점심은 모두 용안면 새마을부녀회 회원들 30여명이 이른 새벽부터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점심은 미역국과 김치, 어묵볶음, 단무지무침, 김 등이 제공됐다.
서은숙(68) 부녀회장은 “수십년간 함께 산 이웃들이 난생 처음 폭우 피해를 입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급하게 회원들과 함께 면사무소에서 음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 기준 용안초에는 주민 93명이 대피해 있었다. 익산시는 전날부터 용안면 10개 마을 주민 600여 명을 인근 학교와 경로당 등으로 대피시켰다.
익산시 관계자는 “대피소마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에어컨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주민들이 대피소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시 대피소인 용안초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산북천으로 가는 도로는 여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대청댐 방류량 확대와 사흘간 쏟아진 비로 금강 수위가 상승하면서 산북천 제방 인근 도로까지 물이 덮친 것이다. 주민들은 먼발치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황톳물에 잠긴 마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용안면 칠목마을에 사는 이란영씨(46)는 이날 성인 허리 높이만큼 물이 찬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10년 전부터 상추 농사를 크게 하고 있는데 빗물에 비닐하우스가 다 잠겨 들어가질 못하고 있다”며 “매일 10박스씩 상추를 출하해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근로자들 한 달 인건비만 1500만원이 드는데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돼 ‘본국에 다시 돌아가라’는 말까지 했다”고 했다.
지난 13일부터 이날 오후 2시까지 익산 주요 지점 강우량은 함라면 499.5㎜, 여산면 448.5㎜, 익산시 신흥동 336.6㎜ 등이다. 기상청은 오는 16~18일까지 전북에 100~250㎜, 많은 곳은 300㎜까지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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