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밀려든 6만t 물…구조대도 못들어가 21시간만에 잠수부 투입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6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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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폭우로 침수돼 1명이 사망하고 차량 10여대가 물에 잠긴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앞에서 소방당국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살려주세요!”
충북 지역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던 15일 오전 8시 45분경. 인근 미호천교를 건설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으로부터 대피 전화를 받고 집을 뛰쳐 나오던 김용순 씨(58·여)는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입구로 물이 밀려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 씨의 눈에는 지하차도에서 물에 잠겨 고립된 화물차 위에 올라가 있던 남녀 2명이 보였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 강물 6만t 2분 만에 들이닥쳐
김 씨는 119로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지만 이미 물이 급격히 불어난 다음이었다. 출동한 구조대는가드레일 등을 잡고 버티던 9명을 구조했다. 이어 지하차도 안쪽을 수색하려 했지만 이미 물이 불어나 고무보트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씨는 “순식간에 물이 찬 탓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고 했다.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오송지하차도 침수 참사는 신고 접수 후 2분 만에 차량 15대가 순식간에 물에 잠길 정도로 순식간에 발생했다. 기록적 호우로 인근 미호강 제방이 붕괴하면서 6만 t의 물이 급격하게 차 오른 것이다.

당시 지하차도에 진입하려던 차량 운전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린 영상에 따르면 지하차도 내 물이 급격하게 차오르면서 절반 가까이 들어왔던 일부 차량은 급히 역주행을 시도해 지하차도를 빠져나왔다. 또 지하차도를 중간 이상 지났던 버스차량 안에 흙탕물이 급격하게 차오르면서 승객들이 당황하는 모습도 찍혔다. 불과 수초 차이로 생사가 갈릴 정도로 급박한 순간이었다.

15일 오후 미호천 범람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진입도로에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 중 상당수는 차를 돌리지 못해 고립됐고 차를 버리고 빠져 나와 터널을 나오려 했지만 지하차도가 685m(터널 구간 436m)나 되는 데다 워낙 급하게 물이 차 올라 대피하지 못했다.

구조작업도 원활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1분에 3t을 배수할 수 있는 방사포 대용량 시스템을 투입했지만 유입되는 물의 양이 너무 많아 수색 작업에 착수하지 못했다. 소방 관계자는 “지하차도가 사각형 구조여서 에어 포켓(산소가 남은 공간)도 없었고 구조대도 들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내부가 흙탕물로 뒤덮여 잠수부도 투입하지 못했다.

결국 물막이 시설을 만들고 어느 정도 배수가 된 16일 오전 5시 55분에야 침수 21시간만에 잠수부를 투입했다. 그리고 오후 7시 현재 9명의 시신을 인양한 상태다. 소방 관계자는 “접수된 실종 신고는 11명으로 인양된 시신과 신원 확인을 하고 있다. 희생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 폭우로 우회하던 버스에서 시신 5구 발견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버스는 청주국제공항과 오송역을 오가는 급행버스인데, 원래 다른 노선으로 운행해왔지만 폭우로 기존 노선이 통제되자 오송지하차도로 우회했다가 피해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버스에선 5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이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생존자들을 치료 중인 한 병원 관계자는 “119 차량을 타고 여성 4명이 응급실로 왔는데 모두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고 일부는 얼굴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신발도 없는 맨발 상태였는데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경찰은 침수 상황을 담은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분석 중이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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