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응급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다 숨지는 일명 ‘응급실 뺑뺑이’ 사고에 대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16일 “마치 ‘너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환자를 받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취지의 정책당국 대응은 잘못됐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가장 큰 원인은 배후 진료나 중환자실, 수술 인력 부재 등 최종 치료 인프라의 부족 때문”이라며 “불가피한 의료사고의 위험에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응급의료 사고 책임보험을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의사회는 이날 서울 용산구 용산드래곤시티 친타마니홀에서 2023 의사회 학술대회 및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와 같은 응급의료진들의 대량 이탈과 지원율 하락이 심해질 경우 응급의료 체계의 붕괴는 머지않았다. 한 번 망가진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자 수용 거부에 대한 경찰의 수사 등이 중지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3월에는 대구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다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경찰 측은 환자가 가장 처음 이송된 병원의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의사회는 “적극적인 수용을 장려할 대책은 없고, 법적으로 보장도 되지 않는데 마치 환자를 보기 싫어서 받지 않는다는 식의 언론보도와 받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정책당국의 대처방식은 응급의료진들의 좌절과 분노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민·형사소송의 두려움에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응급상황의 명백한 과실이 없는 의료행위에 대한 면책을 확대하고, 불가피한 의료사고의 위험에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응급의료 사고 책임보험을 도입하라”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우리는) 응급의료 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절박한 심정”이라며 “환자 수용 결정은 의료행위의 연장일 뿐, 법적인 강제의 대상이 아니다. 수용 여부를 경찰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의사회는 응급실이 항상 붐비는 ‘과밀화’ 문제가 △무제한적인 병원 선택권 △상급병원 선호 현상 △비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와 보상체계 △경증 환자를 담당할 1차 의료의 붕괴 △중증도가 아닌 편의를 고려한 응급실 이용문화 등 복합적 원인에 의해 생긴 현상이라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경증 환자를 분산하기 위해 119를 전면 유료화해 이송을 자제하고, 수가 인상 등을 통해 경증 환자를 분산해 줄 급성기 클리닉에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그중 119 유료화는 “공공재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데 대한 비용 청구”라고 주장에 대한 취지를 설명했다.
이형민 의사회장은 “코피가 나도 119를 타고 온다. 구급차가 택시인가, 봉고차인가. 현재 ‘119를 타고 오는 환자는 응급환자’라는 서로 간의 믿음이 사라진 시대”라고 꼬집었고, 최석재 홍보이사도 “119가 환자를 적재적소에 데리고 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진료 후 청구 방식을 제시했다.
의사회는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경증 환자는 본인이 경증임을 알지만, 갈 곳이 없어 방문하는 환자군”이라며 올바른 이용문화에 대한 홍보·교육은 물론, 주취 난동자들·단순 편의를 위한 응급실 진료를 거부할 근거 규정과 응급실 폭력의 가해자는 향후 응급실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요구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해야 하는 개원’을 제목으로 피부미용 개원모델이나 통증주사 치료, 항암치료에 대한 강의가 마련되기도 했다. 많은 의료진의 응급의료 현장 이탈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내 1호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이동필 전(前) 계명대 교수는 별도의 발표를 통해 △시급 환자 진료 체계 도입 △응급의료인 특성을 반영한 지원 및 보상 △응급의료인 주관 지역 단위 컨트롤타워 △자질 향상을 위한 타 진료과 응급 수련 △중증도 분류 및 PA(진료지원인력) 제도 도입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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