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산사태로 아내를 잃은 신모 씨(70)는 미국에 거주하는 큰아들의 말을 전화기로 듣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큰아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입관을 미뤄 달라고 부탁한 것. 신 씨는 17일로 예정됐던 입관식을 아들의 바람대로 하루 늦췄다. 신 씨는 빈소가 차려진 예천군 권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들도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예천군 상리면 백석리에 사는 신 씨 부부는 동네에서 금실 좋은 부부로 유명했다. 신 씨가 지방공무원으로 일하다 10년 전 퇴직해 귀촌했는데, 농사일은 신 씨가 도맡아 하며 아내를 아꼈다고 한다. 하지만 기록적 폭우로 15일 새벽 산사태가 일어나며 아내가 토사에 매몰됐다. 얼마 안 돼 구급대원에게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신 씨는 토사에 휩쓸려 집 밖으로 튕겨 나가며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신 씨는 “아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곧바로 고개를 젓더라”라며 “내가 가고 아내가 살았어야 하는데 원통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라고 했다.
집중호우로 경북에서만 이날까지 1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된 가운데,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뒤늦게 전해지고 있다.
15일 오전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에선 70대 노부부가 차를 몰고 가다 내성천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다. 실종된 A 씨(70)와 남편 B 씨(73)는 마을 근처에 사는 여동생 집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당시 폭우가 심해 여동생이 운전을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산리 경로당에서 만난 이웃 주민 한천리 씨(85)는 “밤에 운전하지 말고 마을 안쪽 길로 걸어왔어야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종된 70대 노부부의 휴대전화만 발견돼 자녀들이 눈물짓는 일도 생겼다. 15일 새벽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에선 집중호우로 쏟아진 흙더미에 C 씨(74)와 부인 D 씨(78)가 매몰됐다. C 씨는 16일 오전 7시경 자택 인근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집 안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D 씨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집 주변 흙더미에서 부부의 휴대전화를 찾아 가족에게 전달했다. 자녀들은 “어머니 시신은 못 찾았는데 휴대전화만 돌아왔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에선 20대 딸과 그를 구하려던 60대 아버지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15일 산사태로 토사가 주택을 덮치면서 아버지 김모 씨(67)와 첫째 딸(25)이 숨지고 어머니 정모 씨(58)는 구조된 것. 남편과 큰딸을 잃은 정 씨는 17일 오전 발인식을 마치고 “남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딸을 구하러 갔는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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