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 원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취소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18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도 제기했다고 밝혔다. PCA의 배상 판정이 나온 지 28일 만으로, 이날은 판정 취소소송 제기 기한 만료일이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추진할 때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행사하도록 했다며 7억7000만 달러(약 9900억 원)의 배상금을 청구했다.
PCA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20일 엘리엇 측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우리 정부가 배상 원금과 이자, 법률 비용을 포함해 약 1300억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와 관련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엘리엇 ISDS 사건 판정문에서 중재판정부의 명백한 계산상 오류와 불분명한 판시 사항이 있음을 확인했다”며 중재판정부에 판정 해석·정정을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중재판정부가 엘리엇의 손해액을 산정하기 위해 삼성물산이 지급한 합의금을 ‘세전 금액’으로 공제하라고 설명하고도, 정작 ‘세후 금액’을 공제하는 오류를 저질러 손해배상금이 약 60억 원 증가했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또 중재판정부가 판정 이유에서 손해배상금 원금에 붙는 326억 원 상당의 판정 전 이자를 ‘원화’로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해놓고 주문에서는 ‘미화’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에도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장관은 판정 불복 이유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의 ‘관할 위반’을 들었다. ISDS 사건에서 관할이란 ‘재판권’ 의미에 더 가깝다. ISDS를 제기할 수 있는 사건인지에 대한 사전적 판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할 요건이 인정돼야 중재판정부의 판정 권한이 인정된다.
한 장관은 중재판정부가 한미 FTA상 관할 인정 요건을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재판정부가 국민연금을 ‘사실상 국기기관’으로 해석해 의결권 행사 책임이 정부에 귀속된다고 본 것에 대해 “한미 FTA가 예정하고 있지 않은 ‘사실상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이어 “한미 FTA 상대국인 미국도 중재판정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비정부기관의 조치’는 ‘위임받은 정부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국가기관이 아닌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정부가 채택한 조치가 아닐뿐더러, 그 책임이 한국 정부에 귀속되지도 않으므로 관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또 “소수 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 주주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게 상법상 대원칙”이라며 “소수 주주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다른 주주인 엘리엇의 투자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를 바로 잡지 않을 경우 향후 우리 공공기관 및 공적 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부당한 ISDS 제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진행 중인 ISDS 사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엘리엇 ISDS 판정에 대한 취소 소송 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 장관은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낸 합병무효 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내 법원이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등의 위법행위가 있었더라도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중재판정부가 국정농단 사건의 형사 판결을 상당 부분 인용한 것에 대해선 “국민연금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형사판결과는 법리상 궤를 달리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국문·영문으로 작성된 엘리엇 판정문은 이날 오후 8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및 법무부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한 장관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판정의 해석·정정 신청 및 취소 소송 진행 경과를 신속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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