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태국 마약류 단속 ‘사이렌’ 현장
합동단속 4개월 215만명분 적발… ‘골든 트라이앵글’서 생산된 마약류
방콕 거쳐 인천공항 통해 밀반입
현지보다 30배 넘는 시세차익 노려
“이 많은 화물에 얼마나 많은 마약이 숨어 있을지 가늠조차 안 됩니다.”
지난달 19일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 타이항공 물류센터. 화물 보안검색용 엑스레이를 통과하는 박스를 지켜보던 태국 관세총국 직원 라차따 띠라옹 씨(32)는 이같이 말했다. 매일 6만 건의 물류가 해외로 향하는 이곳은 태국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다. ‘유통 허브’인 이곳에는 마약류를 숨긴 것으로 의심되는 화물에 붙여놓은 ‘빨간 딱지’ 수십 장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18일부터 3박 4일 동안 태국 현지에서 한국과 태국 관세 당국의 합동 마약 단속 작전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작전명은 ‘사이렌’. 태국에서 사이렌을 울리면 이를 받아 한국에서 적발하겠다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양국 관세 당국에 따르면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등 3개국 접경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제조된 마약류 상당량이 태국을 경유해 한국에 밀반입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필로폰 중 절반 가까이가 이곳에서 유입됐을 정도다. 한국이 동남아 마약 세력의 주요 타깃이 된 것이다.
● “한국행 토마토소스 택배 열어보니”
18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 3월부터 지난달까지 진행된 사이렌 작전에선 215만 명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인 72kg의 마약류가 적발됐다. 이 중에서 필로폰은 12kg이었다.
이 중 상당량은 한국으로 향하는 우편물이나 택배, 화물 등에 숨겨서 반입하려다가 적발됐다. 띠라옹 씨는 “올 3월 태국에서 충남 홍성군으로 향하던 택배 상자가 한 번 뜯겼던 흔적이 있어 조사해 보니 토마토소스 안에 몰래 숨겨놓은 필로폰 8g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한국 관세청 전혜경 주무관과 태국 관세총국 소속 파나랏 파혼웻 씨(36)는 태국 방콕에 있는 한 배송업체 창고에 보관 중이던 가죽 가방에서 신종 마약류인 ‘야바’를 찾았다. 파혼웻 씨는 “태국 전통 문양이 새겨진 가방에 뭔가 숨겨져 있는 듯해 뜯어보니 가방 26개에서 야바 18kg이 나왔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해외여행이 재개되며 여행객을 통한 마약류 밀수도 늘고 있다. 올 3월에는 태국에서 2박 3일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30대 한국 남성이 필로폰 700g을 속옷에 숨겨 입국하다가 붙잡혔다.
● 비싸게 팔리는 한국에 눈독 들이는 국제 마약상
국내로 반입되는 동남아발 마약류가 늘어나는 건 한국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손쉽게 해외 직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아 현지보다 비싸게 팔 수 있어 시세차익을 노린 해외 마약상들이 국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필로폰 가격은 g당 275달러로 추정된다. 28.7달러인 태국의 10배 가까이나 된다. 캄보디아(8달러) 등 다른 동남아 국가의 30배 이상이다. 심인식 UNODC 선임분석관은 “마약 유통 세력은 동남아에서 파는 것보다 막대한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한국 판매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국제 공조를 확대하며 마약 밀반입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태국 관세총국 관계자는 “항공 화물보다 배편을 통해 태국에서 해외로 유출되는 마약이 더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항구 합동 단속 등 국제 공조 대응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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