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호우 피해]
지하차도 안전대책 흐지부지
정부, 2020년 참사뒤 “의무설치 입법”
입법 않고 강제성 없는 행정규칙만
2020년 7월 부산 동구 초량1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사망자 3명이 나온 직후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 일환으로 신규 지하차도에 자동차단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무화 조치가 이행되지 않았고 이후 신설된 지하차도 7곳 중 1곳에만 자동차단장치가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 강제성 없는 행정규칙으로 ‘유야무야’
1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는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 후 보름가량 지난 2020년 8월 9일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행안부는 “신규 지하차도에 대해 자동차단시설이 의무 설치되도록 국토부 등과 협의해 8월에 입법 예고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단장치는 침수 위험이 높아질 경우 지하차도에 차량이 진입할 수 없게 막아 주는 시설이다.
하지만 당시 예고했던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행안부와 국토교통부, 법제처 등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1년 4개월가량 지난 2021년 12월 국토부의 행정규칙 ‘도로터널 방재·환기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방재등급 2등급 이상 터널 전방 100m 정도에 터널진입차단설비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처벌 조항이 없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해당 지침은 일반 터널에 대한 내용으로 지하차도 역시 터널에 준해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처벌 조항이 없다 보니 강제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 신축 지하차도 7곳 중 1곳만 설치
지하차도 1곳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하려면 수억 원이 필요하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의 경우 예산 7억 원을 들여 9월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거액의 예산이 필요한데 안 지켜도 그만이다 보니 행정규칙 개정 이후 생긴 신규 지하차도에도 대부분 자동차단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2023 도로 교량 및 터널 현황 조사’에 따르면 국토부 행정규칙이 시행된 2021년 12월 2일 이후 신축된 지하차도는 총 7곳이다. 이 중 자동차단시설이 설치된 곳은 1곳에 불과했다.
유일하게 설치된 곳은 부산 남구 ‘문현동 지하차도’로 2020년 침수 사고가 발생한 초량 지하차도에서 약 3.6km 떨어진 곳이다. 사고가 난 지역 인근에만 자동차단시설이 설치된 것이다.
자동차단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지하차도 6곳 중에는 이번 참사가 일어난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오창 지하차도’도 있었다. 19일 직접 오창 지하차도를 방문해 둘러본 결과 왕복 4차로 지하차도인데 길이는 260m가량이었다. 오창 지하차도는 미호강의 지류인 성암천과 불과 800m 떨어져 있어 폭우가 내릴 경우 침수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전문가들은 침수 사고를 막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자동차단시설 설치라고 입을 모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상기후가 빈번해지면서 어떤 지하차도가 침수될지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법규상 강제성을 부여해 위험한 곳부터 점진적으로 확대해 어느 시점에는 모든 지하차도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하여 사고 예방과 관련해 미흡했던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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