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김용기 과자점
강서구 송정역 인근에 자리
손자까지 3대째 과자 구워
인근 정류장 이름도 ‘제과점 앞’
20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용기 과자점’. 가게 안에선 계란과 버터가 섞인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갈색 톤으로 꾸며진 10평(약 33㎡) 남짓한 가게엔 찹쌀, 쑥, 깨, 파래 전병 등이 큼지막한 투명 박스에 종류별로 담겨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종이봉투에 가득 담아 사오셨던 추억의 과자들도 가득했다.
● 손자까지 3대째 ‘과자쟁이’의 삶
김용기 과자점에선 옛 방식 그대로 저울에 무게를 달아 과자를 판다. 이날 경기 용인에서 과자를 사러 온 양모 씨(43)는 “부모님께 한 번 사드렸는데 좋아하셔서 매달 이곳에 들른다”며 “시중 과자보다 달지 않고 바삭해 자꾸 손이 간다”고 말했다.
김용기 과자점은 서울지하철 5호선 송정역 인근에서 1965년 개업한 후 58년째 영업하고 있다. 현재는 창업주 김용기 씨의 딸 김지연 씨(53)와 사위 송영신 씨(54), 그리고 손자가 3대째 ‘과자쟁이’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손자는 군대를 다녀온 후 “나는 어차피 과자 일을 계속 할 것”이라며 미련 없이 대학을 그만뒀다고 한다.
사위 송 씨는 “가게를 이어받은 1990년대만 해도 인근에 전병 가게가 세 곳 있었는데, 다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다”며 “과자 일이 힘들다 보니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창업 당시 김용기 과자점 이름을 따 인근 버스정류장 이름을 ‘제과점 앞’이라고 지었는데, 현재까지도 정류장 명칭이 바뀌지 않았다.
김용기 과자점은 모든 과자를 수작업으로 만든다. 직접 고안한 기계에 반죽을 넣으면 붕어빵 기계처럼 과자틀이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며 구워진다. 알맞은 타이밍에 잘 구워진 과자를 꺼내려면 화장실도 가기 힘들다. 불 앞에 묵묵히 서 있기 위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10년 전만 해도 오전 1, 2시까지 자는 시간을 포기하고 과자를 구웠는데 요새는 과자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오후 4, 5시 정도로 마감 시간을 줄였다. 그러다 보니 명절 때는 준비한 과자가 1, 2시간 만에 동나기도 한다. 가게가 지나치게 널리 알려지면 단골 손님들이 못 올까 봐 방송 출연도 안 한다.
● “추억을 선물하는 과자점”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단골 손님’ 리스트도 빼곡하다. 트럭 장사를 하는 한 손님은 전북 익산에서 과자를 사기 위해 이곳까지 온다. 딸 김 씨는 “그 손님은 물건이 없는 빈 트럭을 몰고 과자 10개를 사기 위해 오기도 한다”며 “택배로 배달을 해주는데도 굳이 직접 와 사가시는 단골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밀가루 음식을 안 먹지만 이 집 과자는 먹을 수 있다”며 사가는 어르신도 있다. 김 씨는 “그 어르신께 ‘우리 과자에도 밀가루가 들어간다’고 설명하는데도 매번 같은 얘길 하신다. 담백한 맛 때문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뜻 같다”며 웃었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손님이 맛을 잊지 못하고 다른 손님을 통해 과자를 사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약과, 식혜 등 소위 전통 음식을 즐기는 이른바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트렌드가 유행하면서 젊은층도 많이 찾아온다. 송 씨는 “언제나 같은 과자를 구우니 손님들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 같다”며 “누군가에게 편안한 추억을 선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 남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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