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는데, 아기가 아프고 밥도 못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뜨끈한 불고기에 된장찌개 드리고 싶었어요.”
지난 5월 24일 괌을 할퀴고 지나간 태풍 ‘마와르’ 때문에 한국인 관광객 3400여 명은 발을 동동 굴렀다. 숙소에 비가 들이닥쳐 호텔 로비에서 지내야 했고, 갖고 온 약이 다 떨어져 난감한 상황도 왔다. 전기가 끊겨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은 상했고 허겁지겁 다녀온 마트에서 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괌 한식당 ‘세종’의 백장현 사장은 한국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기는 끊겼지만 4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발전기를 돌렸고, 이런 사태를 대비해 저장해 둔 식용수를 사용해 약 100인분의 식사를 만들었다. 또한 괌에서 택시를 운영하는 지인을 통해 ‘괌 자유 여행’ 카페를 알게 됐고 ‘저희 오시면 불고기를 드실 수 있으니 오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글을 보고 약 150명의 한국 관광객이 한식당 ‘세종’을 찾았다. 따끈따끈한 불고기에 된장찌개, 김치, 그리고 찰기가 없는 쌀을 여러 번 불려 고국에서 먹는 쌀밥 맛을 느끼며 한국 손님들은 잠시나마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오신 분 중에 본인이 ‘의사’라고 하시면서, 두 손을 부여잡고 너무 고맙다고 눈물을 펑펑 흘리시더라고요. 해외에서 이런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정말 고맙다고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셨는지 몰라요.”
백장현 사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한 것이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나와 살다 보니 서로 도움을 주는 일에 익숙하다. 이런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식당 ‘세종’은 2002년에 문을 열어 21년째 괌의 대표적인 한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주 고객은 현지인이라고. 그는 “현지인들이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전체 손님의 90%가 괌 현지 분들이다”며 “특히 갈비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며 그 인기를 실감했다. 오후 5시 식당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계속해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식당에 들어왔다 이웃 주민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식당은 손님들이 가득 자리했다.
백장현 사장은 “우리 식당은 운이 참 좋게도, 시작할 때부터 잘 됐다”며 “제가 생각했을 땐 한국인들의 특유의 ‘성실함’이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을 시작할 때, 홍보를 하기 위해 음료 300병을 들고 공항으로 나갔다고. 들어오는 관광객들에게 음료 1병씩을 나눠주며 ‘세종’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한 오는 손님들을 기억해 다시 찾아왔을 때, 이름을 부르거나 “또 오셨네요~”라며 반갑게 맞이했다고 했다. 그는 “어떤 일본 손님이 1년 만에 찾아왔는데 내가 본인을 기억하자 무척 감동을 받았더라”며 “이후에도 늘 우리 식당에 오는데 친구들을 데려와 우리 가게를 추천하곤 했다. 돈 버는 기술은 없는데 사람 마음을 사는 기술은 있나 보다”고 말했다.
백장현 사장은 한국 음식 말고도 한국 문화를 괌 현지인들과 교민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괌으로 오기 전, 그는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었다. 연출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가운데 지인이 “괌에서 돈 벌어서 뉴욕에서 공부해 봐라”는 이야기를 듣고 1991년 괌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해 정착하게 됐다.
‘배우’라는 꿈은 접었지만 ‘공연’에 관심은 여전히 컸다. 이에 한국에서 알고 지냈던 아티스트를 불러 식당에서 공연을 하거나, 괌에서 진행하는 ‘K-페스티벌’이 있을 때 늘 참여를 한다. 식당에서 열리는 한국 공연은 1세대 교민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백장현 사장은 “어르신들이 고국의 가락과 춤을 보시면 정말 좋아하신다”며 “앞으로 교민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했다.
“돈을 벌려고 이곳에 왔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나눔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이곳에서 많은 분들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맛보게 하고, 아름답고 멋진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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