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회부에는 20여 명의 전국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전국팀 전용칼럼 <동서남북>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온 대표 컨텐츠 입니다. 이제 좁은 지면을 벗어나 더 자주, 자유롭게 생생한 지역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 등 뉴스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집중호우가 발생했던 지난 15일. 충북 청주에서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심각해졌고, 결국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
2020년 부산 동구 초량 지하차도 침수나 지난해 이태원 참사까지….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당국은 매뉴얼 보완과 대응 체계 정비 등을 약속했지만, 또다시 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이번 사고의 진상은 추후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사람이 이겨낼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참사 현장…유가족을 위한 진정성 있는 모습은 없었다
참사 발생 첫날 사고 현장으로 투입돼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했다. 실종자 구조 작업을 위해 대형 장비를 비롯해 군과 소방, 경찰 인력들이 투입되면서 모두의 시선은 물에 잠긴 지하차도로 향했다.
하지만 이 사고 현장에는 구조 인력뿐 아니라 애타게 현장 상황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이 있었다. 당시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지도 않았고, 누구 하나 안내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참사 당일 오후 9시 소방본부의 브리핑이 끝난 뒤에야 갈 곳 없이 맴돌던 유족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고, 이들은 밤새 뜬 눈으로 현장을 지켜봤다.
오송참사유가족협의회가 조성될 때까지도 제대로 된 상황을 전달하고 알려주는 곳도 없었다고 한다.
● 진실은 가려지고 연이은 책임 공방만…
게다가 이번 침수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놓고 관련 기관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특히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발단이 된 미호강 범람을 두고 임시제방 공사를 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과 하천 전반을 관리하는 금강유역환경청, 금강홍수통제소 간 책임 공방은 점입가경이었다.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각 기관은 “해당 사안은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공사 허가권자인 금강청과 공사 관리·감독 책임자인 행복청, 홍수 경보 발령을 하는 금강홍수통제소 모두 책임지는 모습이 없었다. 사전에 대처했다면 막았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책임 회피가 우선이었다.
● 국조실 진상규명 나서자, 경찰 부실 대응 논란까지
여기에 충북도와 청주시, 흥덕구, 경찰까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국민 보기에 볼썽사나울 지경이었다. 결국 국무조정실이 감찰 조사에 들어가 진상규명에 나서게 됐다.
국조실은 “경찰관 6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특히 국조실은 청주흥덕경찰서를 감찰하는 과정에서 사고 당일 소속 경찰관들이 어느 지하차로도 출동하지 않고, 국조실에 허위 보고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전했다. 갑작스럽게 이번 참사에 대한 원인으로 경찰이 지목된 것이다.
그러나 참사 당시 현장 부근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이 갖고 있던 태블릿PC에 오류가 발생해 ‘참사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지시를 전달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여전히 기관 간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관련 기관들의 책임 공방에 이어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까지 이번 참사는 “재해 대책 인프라 후진국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 합동분향소는 정치적인 도구가 아니다
한편 유족들의 요청으로 20일부터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분향소가 충북도청에 설치됐다. 애도를 표하는 시민들의 발길은 이어졌고 헌화를 마친 이마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궁평2지하차도를 항상 이용해 왔던 시민들은 “남 일 같지 않다”며 더욱 진심으로 이번 참사를 안타까워하고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합동분향소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있었다. 이틀 동안 합동분향소 취재를 하면서 이곳이 분향소인지, 정치인들의 만남의 장소인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끝나고 커피나 한잔할까?”…. 실제 합동분향소에서 직접 기자가 들었던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담아보려고 휴대전화로 영상 촬영을 시도하자, 취재를 의식한 듯 현장에 모인 정관계 인사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물론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다른 시민들과 함께 묵념하고 조용히 자리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분향소 안팎에서 파안대소하던 일부 정치인들에겐 그저 하나의 행사로만 여겨진 듯해 씁쓸함을 남겼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그만…오송 참사가 마지막이길
결과적으로 이번 참사는 인재(人災)다. 기후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던 집중호우가 있었다고 하지만 분명 막을 수 있던 사고임은 틀림없다. 사고 이후 그 뒤에 얽힌 구조적 문제를 이번엔 반드시 뽑아내고 고쳐야 한다. 이번과 같은 사건이 반복돼선 안 된다. 천재지변을 완전히 막을 수 없더라도 대비는 가능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적어도 ‘인재’ 논란이 또 발생하지는 않게 해야 하지 않는가. “더 이상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말을 또 다시 듣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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