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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호우 피해가 겨우 진정국면에 들어선 28일 남성현 산림청장은 “올 들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바쁘다”고 말했다. 올 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에 이어 이번에는 산사태 등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산림청 재난부서 직원들은 주말과 휴일도 반납한 채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산림청 직원들이 정신적으로 더 힘든 건 ‘이번 산사태의 원인이 바로 임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올 들어 발생한 산사태 900여 건이 임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어 임도가 산사태의 주 원인이란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물론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건 사실이다. 이달 26일까지 발생한 산사태 890건 중 임도에서 발생한 것은 316건으로 전체 산사태의 35.5%에 이른다.
하지만 임도 자체를 산사태의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산림청의 입장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일부 부실하게 조성됐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건 맞지만 모든 임도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실제로 산사태가 일어난 구간은 전체 임도의 0.004%에 불과하다.
임도의 역할도 분명하다. 1968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임도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또 산림경영, 재배 임산물 운반, 늘어나는 숲길 트레킹 인구 증가 등으로 임도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산림(총 629만ha)에 설치된 임도는 산림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임도는 총연장 2만4929km로 ha당 3.97m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은 ha당 54m, 일본은 ha당 23.5m로 우리나라보다 각각 13.6배, 5.9배나 된다.
또 국유림의 임도 밀도는 ha당 4.98m인데 비해 국내 산림 중 74%를 차지하는 공·사유림의 임도 밀도는 ha당 3.6m에 불과하다. 특히 임도 설치에 여러 제약이 따르는 국립공원 지역은 ha당 0.16m에 불과해 대형 산불 재해에 더 취약하다.
임도의 필요성은 재난 현장에서도 입증됐다.
올 3월 11일 경남 하동군 지리산 국립공원 자락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을 잡기 위해 헬기 59대와 진화대원, 공무원, 군인 등 2000여 명이 진화에 나섰다. 해가 진 후 헬기가 철수했는데, 화재 현장은 급경사지로 임도조차 없어 진화 차량이 접근할 수 없었다. 결국 화선 가까이 근접해 진화하는 과정에서 진주시청 공무원이 숨졌다. 구급대원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공무원을 산 중턱에서 업은 채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당시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임도만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지난 3월 8일 경남 합천에서 산불은 났을 때 강한 바람으로 급속히 확산됐으나 야간에 임도를 통해 장비와 인력이 투입돼 밤샘 진화작업을 벌인 끝에 일몰 시 10%에 불과하던 진화율이 다음 날 오전 5시경 92%까지 올랐다. 지난해 3월 역대급이었던 경북 울진-삼척 산불 당시에도 2020년에 설치된 임도 덕분에 200~500년 된 금강소나무 8만 5000그루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산림청은 임도 관련 예산을 확충하고 국립공원 등에도 적극적으로 임도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조성된 임도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강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조성된 임도에 대한 점검과 관리를 강화해 올해 같은 산사태 피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등 과학기술을 접목한 치밀하고 과학적인 임도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임도 지반을 단단하게 보강하고 임도 주위 계곡에 사방댐을 건설하는 등 보강 작업도 중요하다.
산림청 관계자는 “정확한 산사태 피해 원인 파악을 위해 전문가를 포함한 산림피해 조사·복구 추진단을 운영 중이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신속한 복구 및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임도 관리감독을 강화해 산사태 위험성을 줄이면서 임도의 산불 진화 기능도 함께 발전시켜나가는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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