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119구급차]
“부친, 구급차 없어 병원 가던 중 숨져
1993년 1억 들여 15인승 시제품 기증
아직 12인승 대부분… 해외서 놀라”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가정의학과 교수·64)은 1993년 ‘한국형 구급차’를 직접 설계해 제작한 주인공이다. 그 공로로 인 센터장은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2012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됐다. 그는 ‘전남 지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진 벨 선교사(1868∼1925)의 외증손자이자, 독립유공자인 윌리엄 린턴 목사(1891∼1960)의 손자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한국 국적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런 인 교수가 25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와 만나 “지금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119구급차는 세계적인 망신”이라고 성토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형 구급차를 만들었나.
“1984년 4월 순천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제대로 된 구급차가 없었다. 아버지는 택시 뒷자리에 실려서 병원으로 가던 중 돌아가셨다. 한국에도 제대로 된 구급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구급차의 조건은 무엇인가.
“구급대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 세 가지는 △기도 확보 △심폐 소생 △중추신경 보호다. 그러려면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를 할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12인승이 아니라 15인승이 필요한 이유다. 당시 아버지 지인들이 미국에서 모아준 4만 달러에 내 돈을 보태 총 1억 원을 들여 기아차(당시 아시아) 15인승 승합차 ‘토픽’을 개조한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걸 1993년 3월 순천소방서에 기증한 거다. 그 후로 개량을 거듭해서 1997년에 최종 모델이 나왔다.”
―현재 사용 중인 국내 구급차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12인승 승합차 기반이라서 환자 머리맡에 공간이 없다. 기도 확보와 심폐 소생에 적합하지 않다. 모든 선진국을 통틀어 이런 구급차를 주력으로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찾기 어렵다. 해외 동료 의료인이 보면 놀란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정부와 국내 자동차 회사가 합심해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걸맞은 구급차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일부 도입된 15인승 중형 구급차도 문제가 많다. 옆으로 뚱뚱해서 골목길 들어가기가 힘들다. 양옆으로 날씬하면서 앞뒤로 길어서 환자 머리맡을 포함해 응급처치 공간이 넉넉한 차로 119구급차를 확 바꿔야 한다.”
―구급차 말고 바꿔야 할 응급의료 문제가 있나.
“구급대원이 환자를 살리는 걸 가로막는 ‘업무 범위’ 제약도 확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 구급대원은 법적 제한 때문에 심근경색 환자 심전도를 못 잰다. 응급분만 산모 탯줄도 못 자른다. 나는 한국에 응급구조사 자격이 없었던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에서 베테랑 구급대원을 사비로 초빙해 와서 국내 구급대원들을 교육했다. 미국의 응급의료가 강한 건 구급대원이 못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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