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퀸은 전부 트랜스젠더’라는 혐오의 시선도, 여성들의 ‘탈코르셋’ 움직임에 역행한다는 편견도 옛말입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태원 지하의 클럽에서 비밀스럽게 향유되던 ‘드랙’은 젠더의 구분을 넘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인기 댄스 크루 프라우드먼은 드랙 아티스트 ‘캼’과 협동 무대를 선보이며 드랙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인기 유튜버 랄랄의 ‘드랙퀸 분장실 기싸움’ 콘텐츠로 드랙 아티스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드랙이 양지로 올라오는데 기여한 아티스트 중 하나는 현시점 드랙신(Scene)의 슈퍼스타, 나나영롱킴(본명 김영롱·36)입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와 마마무의 뮤직비디오, 박효신 콘서트 티저영상에 출연하는 등 K팝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드랙은 성소수자들만의 문화’라는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화장품 브랜드 ‘헤라’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했습니다. 캠페인 광고 끝 무렵 금색 가발을 벗어던지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유튜브 영상에는 ‘백화점 브랜드 광고에서 드랙을 볼 날이 오다니, 감격을 넘어 존경스럽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이자 드랙퀸. 소수자 중 소수자인 그는 손쉽게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편견의 끝에는 도리어 자신의 삶에 대한 끝없는 긍정이 있었습니다. 헤라 캠페인 광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살잖아요. 자기가 주인공이라면 화려해도 되지 않을까. 새드보다는 해피엔딩.’
해피엔딩을 향해 매순간 나아가는 나나영롱킴을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옥에서 ‘복수자들’이 만났습니다.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던 그가 드랙에 빠져 자퇴한 사연부터, ‘드랙퀸은 잠재적 트랜스젠더’라는 편견에 대한 일침까지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https://youtu.be/zHyBgXqvK1Q)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드랙이 좋아서 대학교를 그만 두셨다고요. 배우가 되고 싶어서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제가 LGBTQ+(성소수자)에 속한 사람이다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서정적인 로맨스 연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남녀의 획일적인 성역할과 사랑 연기를 풀어낼 수가 없었어요. ‘연기는 내 길이 아니구나’ 싶었죠. 자퇴를 하고 5, 6년 동안은 연극이나 뮤지컬을 하나도 안 봤어요. 무대를 보면 제가 연기를 다시 하고 싶어질 것 같았어요. 드랙퀸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밥벌이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젠 동기들 연극도 보러가도 아무렇지 않아요.
―‘드랙’의 어원은 무엇인가요?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여성들이 연극과 오페라 무대에 올라갈 수 없어서 여성의 역할을 남성이 했어요. 남성이 여성 분장을 했을 때 드레스가 무대 바닥에 질질 끌리는 모습에서 ‘드래그’(Drag)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어원에 대한 가설은 워낙 많아서 뭐가 정확한 건진 저도 몰라요. 각자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면 돼요. 예전엔 드랙이 무엇인지 이해시키려고 했거든요. 살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더라고요.
―드랙은 여성성을 강조하는 ‘여장남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무당벌레, 겨털(?)을 연상케 하는 특이한 분장도 많이 하셨더라고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점박이 수트를 입은 드랙 분장을 보고 무당벌레라고 하는 분도 있고 일본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어떻게 봐도 좋아요. 해석은 자유죠. 드랙 아티스트가 반드시 여장만 하는 게 아니에요. 무당벌레 같은 곤충이나, TV, 거품 등 사물이 되기도 해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제3의 캐릭터를 만드는 친구들도 있어요.
―드랙퀸은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남성들, 즉 잠재적 트랜스젠더라는 일부 시각도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드랙을 단순히 진한 화장,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여장’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성애자인 여성 드랙퀸도 있고, 남성성을 강조하는 ‘드랙킹’도 있어요. 드랙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마구마구 표현하는 예술 장르예요. 요즘엔 ‘드랙퀸’ 대신 ‘드랙 아티스트’ ‘드랙 퍼포머’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여요. ‘드랙퀸=여장’이라는 틀이 깨졌으면 좋겠어요.
―드랙이 대중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매니악한 장르예요. ‘풀타임 드랙’으로 생계유지를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는지도 궁금해요. 프리랜서다 보니 수입이 고정적이진 않아요. 지난해 10월까지는 투잡을 뛰었어요. 낮에는 욕실용품 브랜드 ‘러쉬’를 다녔고, 저녁에는 촬영이나 드랙 공연을 했죠. 러쉬는 LGBTQ+를 응원하는 브랜드 중 하나죠. 입사 면접에서 “우리 브랜드는 LGBTQ+를 지지하는데 성소수자에 대한 불쾌감이나 혐오감이 있느냐”고 직접적으로 질문해요. 그래서 러쉬는 LGBTQ+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로 구성이 돼 있죠. 그 덕에 러쉬에서 7년 동안 재밌게 일했어요.
―최근 들어 드랙이 급격히 대중화돼가고 있는 분위기예요. 킹키부츠, 헤드윅, 프리실라 등 드랙 아티스트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인기이고, 최근엔 드랙 아티스트와 K팝 가수들과의 협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요. 해외에선 드랙 문화가 자리 잡은 지 오래 됐는데, 한국에서는 드랙이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 소재가 된지 5, 6년 밖에 안 됐어요. 드랙이 마니아층만 즐기는 음지의 문화였다면, 요즘엔 한층 더 밖으로 나온 건 확실하죠. 남녀 커플이 데이트 코스로 드랙쇼를 보러 오기도 하고, 얼마 전엔 제 공연에 단골 고객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기도 했어요.
‘드랙 아티스트’라는 화려한 외피를 벗은, 사람 ‘김영롱’은 불특정 다수의 혐오 섞인 손가락질로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한창이던 2020년 집단감염이 발발한 곳이 성소수자들이 즐겨 찾는 이태원 클럽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면서 커밍아웃한 게이인 나나영롱킴에게도 하루에 100개 이상의 혐오 메시지가 왔습니다. 당시 그는 강박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렸습니다. “성격이 어두웠으면 자살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혐오의 강도는 심각했습니다. 퀴어 퍼레이드에서는 그에게 설사약을 탄 생수병을 건넨 행인도 있었습니다.
―숱한 악플에 시달려 오셨다고요. 입에 담기에도 어려운 인신공격적인 악플이 너무나 많았어요. 변호사가 악플을 추리니 101개더라고요. 한 사람이 여러 악플을 단 경우도 있어서 사람 수로 따지면 69명이었고, 그들에 대한 고소를 진행했죠. LGBTQ+ 친구들이 악플에 시달리면서 “전부 고소할거야. 가만 안 둘 거야”라고 말은 하지만 실천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다 착하고 여리다보니 그 과정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들을 대신해서라도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다인원을 고소한거고, 아직 진행 중에 있습니다.
―2021년 대부업체 광고모델이 되신 뒤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세상의 편견에 “어쩌라구!”라고 반격하는 앙칼진 멘트가 통쾌했는데요. 일각에선 비난도 있었다고요. ‘대부업체 광고를 왜 하느냐. 제 정신이냐’는 욕을 엄청 먹었어요. ‘트랜지션(성전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당신(나나영롱킴)을 보고 성전환 수술을 하기 위해 돈을 빌렸다가 못 갚고 자살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들었어요. 저를 트랜스젠더로 보셨던 거죠. 주변에 트랜지션을 준비하는 친구들한테 “광고를 보고 돈 빌려서 수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라고 물어보니 “언니는 트랜스젠더도 아니고 드랙퀸인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느냐”고 의아해하더라고요.
―퀴어 퍼레이드에서 행인으로부터 설사약을 탄 생수통을 받으신 적도 있다고요. 맞아요. 퀴어 퍼레이드를 응원하는 척 하면서 물병을 건넸는데 알고 보니 설사약이 타져 있었던 거죠. 혐오의 감정에 빠진 사람들은 죄책감이 없어요. 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는 목적 하나에만 빠져있어서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심각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지 생각하지 못하죠. 단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만이 아니에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혐오의 공통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요? 얼마 전 제 드랙쇼에 대만 남녀 관광객들이 오셨어요. K팝, K드라마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한국의 LGBTQ+ 문화에도 흥미를 갖게 되셨대요. 제 공연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 한국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원래 ‘나나’라는 이름으로만 활동하다가 ‘영롱킴’을 붙이게 된 이유도 해외에 한국의 드랙을 더 알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아직은 생소한 한국의 드랙이, 제 한국 이름 ‘영롱킴’을 타고 더 날개를 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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