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건물 들어서고 바람이 체감상 7~8배는 강해졌어요. 파도는 막아도 바람은 못 막아요.”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는 가운데 상륙을 하루 앞둔 9일 오전 8시께 조금씩 굵어지는 빗줄기와 함께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는 눈에 보일 정도의 모래 바람이 회오리 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사방에서 불어대는 바람으로 인해 우산을 옆구리에 낀 채 모자를 뒤집어쓰거나 바람을 등지고 걸으며 힘겹게 발을 떼고 있었다.
같은 시간 바로 옆 미포항 인근에서 25년째 음식점을 운영한 강모씨(50대)는 가게 밖 간판 철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강 씨는 “저 모래바람은 LCT 건물이 생긴 뒤부터 생긴 현상”이라며 “바닷가 근처라 태풍이 올 때마다 월파 대비를 해왔지만 강풍에는 속수무책이었다”고 한숨 지었다.
인근 초고층 호텔 역시 야외 라운지 및 발코니 가구를 모두 철수하는 등 돌풍을 동반한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에 돌입했다.
부산 해운대구 초고층 아파트가 늘어선 마린시티 역시 초긴장 상태이다. 오후 2시30분께 마린시티 부산영화의 거리에는 헬멧을 착용한 10여명의 경찰인력이 방파제 주변을 중심으로 현장 점검을 하고 있었다.
이 일대 고층건물 입주민과 인근 상인들도 일명 ‘빌딩풍’으로 평소에도 강풍에 시달리고 있어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번 태풍 소식에 합판을 덧대고, 차수판을 설치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빌딩풍은 높고 좁은 초고층 건물 사이를 통과하며 바람이 부딪히고 갈라지는 등 위력이 강해져 부는 바람을 일컫는다. 주변보다 2배 이상의 돌풍이 불고, 강풍으로 인해 깨진 유리는 2차 피해를 일으킬 수 있어 위험 요소로 꼽힌다.
인근 아파트 주민 김모씨는 “아침부터 창문을 닫아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와 집의 모든 창을 닫고, 바다 쪽 창에는 신문지를 붙여놨다”면서 “효과가 크게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유리창이 깨지면 가족은 물론, 행인도 위험해지니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할 수 밖에 없다”고 불안해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가게 내부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어 내부 수리를 해야 했던 한 카페는 큰 천막과 나무 한판 등으로 입구를 막아 대비에 총력을 다했다.
전문가는 비교적 느린 속도로 다가오는 태풍 ‘카눈’의 특징이 빌딩풍의 위험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거북이 태풍’으로 불리는 카눈의 느린 이동 속도로 인해 오랜 시간 태풍의 위력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빌딩풍을 연구하는 권순철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한두번 두드리면 깨지지 않던 창도 20번 두드리면 깨질 수 있는 것처럼 유리창이 오랜 시간 강한 바람에 노출되면 진동 횟수가 늘어 그만큼 유리창 파손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 교수는 “초고층 빌딩 근처에서는 실제로 태풍 풍속의 2~3배 이상 돌풍이 불기 때문에 안내문자, 대피 조치로는 매번 반복되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며 “차수벽을 설치하듯 방풍 펜스를 설치하면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운대구청은 현재 빌딩풍 관련 대응 비상 1단계를 가동하고 있다. 비상 1단계는 태풍 예비특보 발표 시 가동되며, 초고층 빌딩 관리자를 통해 입주민, 상가에 통행 자제 협조 공문을 발송한다.
태풍주의보·경보 발효 시에는 비상 2~3단계를 가동해 LCT, 마린시티 등 집중 피해 예상지역의 주변 차량과 보행자 통제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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