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48화입니다.
“정치인에게 제일 곤란한 경우가 ‘저 아시죠?’ 이거죠? 밥도 같이 먹던지, 행사상 봤던지, 그런 인연으로 뭐 했는데 기억 안나는 사람 너무 많죠? 안면인식장애라고 비난받고 그러죠?”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강규태) 심리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증인으로 나온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직접 신문하며 이 같이 물었습니다. 이에 김 전 부원장은 “네, 네”라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에 대해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하는 등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이같은 질문은 ‘만났다고 해서 꼭 안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 대표 측 주장을 거듭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2주간의 휴정기를 끝나고 처음 맞이한 서울중앙지법의 금요일은 이 대표와 대장동 관련 재판으로 가득 찬 하루였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 반 무렵까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 대장동 및 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 재판, 대장동 5인방의 이해충돌방지법 재판,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뇌물 혐의 재판이 쉴 새 없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 측근 김용, ‘이재명을 지켜라’
이날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에선 검찰이 법정 내 스크린을 통해 공개한 김 전 부원장의 자필 확인서를 두고 검찰과 이 대표 측의 공방이 오갔습니다. 김 전 부원장이 지난해 10월 이 대표 기소 직후 써서 당 대표실로 보냈다는 이 확인서에는 ‘본인(김 전 부원장)은 2018~2019년 경기도 대변인 재직 중 당시 이 지사에게 김 팀장(김 전 처장) 연락처를 알려드린 바 이를 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 확인서를 작성한 경위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 김 전 부원장은 “이 대표가 (2018년 12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등)로 기소된 후 도지사 집무실에서 ‘대장동 실무를 잘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 번호를 알려준 것”이라며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따로 특정해 물어본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김 전 부원장의 이 같은 증언은 재판을 받게 된 이 대표의 발언이 허위가 아니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일 때까지도 김 전 처장의 연락처를 몰랐다는 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검찰은 “이 대표가 기소되니 뒤늦게 자필확인서를 제출한 것” 이라며 이 대표와 김 전 부원장의 말맞추기가 의심된다는 취지로 맞섰습니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으로 문제가 된 2021년 12월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지난해 기소된 뒤에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김 전 부원장이 확인서를 쓰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 또 다른 재판서 ‘주 2회 재판’ 두고 檢-李 충돌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 심리로 진행된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의혹’ 공판준비기일에서는 이 대표 측과 검찰이 ‘주 2회’ 재판 일정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했습니다.
재판부가 “(이 대표의) 출석을 강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피고인 일정에 맞춰 재판할 수는 없다”며 의견을 묻자 이 대표의 변호인은 “2주에 한 번 이상 재판은 도저히 소화할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이 대표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고 백현동과 쌍방울 의혹에 관한 검찰 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구속영장 청구 얘기도 나온다”며 “의원이자 당 대표로서의 필수적인 일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검찰은 “변호인과 피고인의 사정만 말하며 거부하는 것은 안 된다”며 맞섰습니다. 이어 “기소된 정치인 중 주 3회씩 공판에 참여한 경우도 많다”며 “피고인의 개인 사정에 맞춘다면 결국 재판 자체가 수년간 이뤄질 텐데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재판부가 이달 18일 공판 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가지고 향후 재판 일정 등을 추가로 협의하기로 하면서, 올해 3월 시작된 이 대표의 이 사건 재판은 5개월 째 준비절차만 진행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 대장동 5인방 재판, 이해충돌방지법 재판과 병합
이날 또 다른 법정에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등 대장동 5인방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4차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됐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고심 끝에 1년 8개월가량 지속해온 대장동 배임 등 혐의 본류 재판과 이 재판을 병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검찰은 ‘공직자들과 결탁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가 대장동 사건의 본류인 배임 혐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만큼 같은 재판부가 심리 중인 두 재판을 합쳐 달라고 요청해 왔지만 재판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두 사건 심리 진행 정도가 1년 이상 차이 나는 만큼 병합할 경우 재판이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토 끝에 이날 “두 재판의 피고인이 동일하고 공소사실 사이에도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며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증거 조사를 비롯해 향후 심리해야 할 내용이 상당 부분 중첩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병합을 결정했습니다.
한편 이 재판에서 검찰은 이 대표와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공범’으로 하는 공소장 변경도 신청해둔 상태입니다. 추후 재판에서 공소장 변경이 받아들여지면 이 대표는 병합된 대장동 5인방의 재판에도 공식적인 ‘공범’으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은 2주 뒤인 25일 오전 10시 반에 진행됩니다. 이 재판의 쟁점은 ‘성남시장 시절엔 김 전 처장을 몰랐다’ 발언 부분과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허가 관련해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 발언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르면 25일 재판부터 백현동 발언 쟁점에 대한 재판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달 17일과 31일에는 김 전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이, 18일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의혹, 정 전 실장의 뇌물 혐의 재판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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