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3시경 서울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지하 2층 승강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민들 사이로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은 철문이 보였다. 문 옆에는 ‘서울미래유산’ 현판과 함께 ‘신설동 2호선 비영업 승강장’이란 명칭이 붙어 있었다.
● 지하철 초기 모습 간직한 유령역
서울교통공사 직원 안내로 철문을 열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가니 이른바 ‘유령역’으로 불리는 신설동역 비영업 승강장이 나타났다. 일상적 공간에서 비일상적 공간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었다.
안내하던 직원은 “1974년 지하철 1호선을 지을 때 만들어졌지만 중간에 노선이 조정되면서 완공 직후 폐쇄된 곳”이라며 “현재는 출입이 통제된 채 차량기지로 돌아오는 1호선 열차만 선로를 간간이 통과한다”고 설명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지하 2층 승강장과 달리 지하 3층 승강장은 1970년대 역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반 세기 동안 시민의 발길이 닿지 않은 콘크리트 벽과 승강장 바닥은 곳곳이 훼손돼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11-3 신설동(Shinsl-dong)’이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도 눈에 들어왔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초기 서울 지하철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이제 많지 않은데, 이 승강장에는 온전히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빈 플랫폼에는 현대사의 아픔도 서려 있다. 서울시는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할 때 ‘연희동-종각-동대문-천호동’으로 이어지는 5호선 노선을 구상했다. 신설동역 지하 3층은 5호선이 지나갈 용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호선 개통식이 열린 1974년 8월 15일 당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해 숨졌고 이후 양택식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5호선 노선 계획도 조정됐다.
서울시는 용도가 사라진 이 승강장을 1977년까지 차량 정비 작업장으로 활용했다. 현재는 지하철 1호선 열차가 운행을 마치고 군자차량기지로 들어가는 진입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 승객 없이 평일 12회, 휴일 11회씩 열차가 다닌다. 1호선 기관사 장모 씨(54)는 “유령 승강장을 지날 때마다 애써 만든 승강장이 방치되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각광
신설동 비영업 승강장은 지난해 서울시에 의해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서울시는 “서울지하철의 초기 계획이 담긴 역사성을 갖고 있으며 개발이 한창 이뤄지던 서울의 과거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가치가 크다”는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유령 승강장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독특한 매력으로 2000년대 들어 영화·드라마·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드라마 ‘아이리스’, 2013년 영화 ‘감시자들’, 2016년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치얼 업(CHEER UP)’ 뮤직비디오 등이 촬영됐다.
2017년에는 전시공간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일시 개방하기도 했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앞으로도 원래 기능을 훼손하지 않고 안전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유령 승강장 활용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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