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표면보다 버스 정류장이 더 뜨겁다고?[김예윤의 위기의 푸른 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8일 11시 00분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화성 팔달문 인근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쿨링포그’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수원=뉴스1
한여름 도심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은 어디일까요? 대부분 떠올리시는 게 아스팔트 도로 위일 것 같습니다. 종종 언론에서 폭염 강도를 보여줄 때 햇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실험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17일 기상청에서 뜻밖의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폭염이 발생했을 때 아스팔트 포장 도로 위보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이 더 덥다는 것입니다. 보통 버스정류장 위에 그늘막이 있기 때문에 잠시 햇빛이라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버스정류장, 도로에서 뿜어내는 열기 갇혀
기상청이 지난달 7일 서울 송파구의 버스정류장, 아스팔트 도로 위 등 도심 곳곳에서 측정한 기온. 버스정류장이 아스팔트 도로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기상청이 지난달 7일 서울 송파구의 버스정류장, 아스팔트 도로 위 등 도심 곳곳에서 측정한 기온. 버스정류장이 아스팔트 도로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기상청은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폭염이 발생한 6일간 도심 곳곳의 기온을 측정했습니다. 같은 도심 지역 안에서도 주변 환경 조건에 따라 시민들이 다르게 느끼는 열 환경을 분석하기 위해섭니다. 서울 잠실 부근 버스정류장, 아스팔트 도로, 도심 아파트와 주택, 공원 녹지, 흙바닥 등 도심 곳곳 8개 장소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지상 1.5m와 지면 온도를 살폈습니다. 지상 1.5m를 측정한 이유는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기온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먼저 첫 번째 그룹인 아스팔트 도로, 버스정류장, 그늘 쉼터, 흙 놀이터 중에서 지상 1.5m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것은 ‘버스정류장’이었습니다.

지난달 7일 오후 12시 30분경 버스정류장의 최고 기온은 34.4도까지 올라 가장 높은 기온을 보였습니다. 아스팔트 위(33.5도)보다 1도가량 높은 수준입니다. 평균기온 역시 버스정류장이 31.6도로 아스팔트 위(30.5)보다 높았습니다.

이달 1일의 경우 버스정류장은 오후 1시 50분경 최고온도 36.9도를 찍은 후 오후 5시까지 비슷한 온도를 유지하며 평균 온도는 34.3도였습니다. 아스팔트 위와 흙바닥 위는 햇볕이 강한 오후 2~3시경 각각 37.5도, 38.1도까지 올랐지만 이후 기온이 떨어지면서 평균기온(각각 34.3도, 34도)은 버스정류장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발효된 1일 오후 전남 화순군 화순읍 한 버스정류장에서 한 시민이 대형 얼음을 만지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화순=뉴스1
기상청은 ‘버스정류장이 아스팔트 도로보다 더웠던 이유’로 ‘공기 순환’을 지목했습니다. 사실, 바로 지표면 위의 온도를 쟀을 때는 아스팔트 바닥이 최고기온이 최고 55도까지 오르는 등 가장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아스팔트 지표면 위 1.5m는 사방이 개방돼 공기 흐름이 양호해 예상보다 기온이 높지 않았습니다. 열이 공기 중으로 분산됐기 때문이죠.

반면 버스정류장을 떠올려 보시죠. 위 사진을 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우실까요. 머리 위 그늘막을 비롯해 뒷면과 옆면이 벽으로 막힌 반폐쇄 공간입니다. 열기가 ‘갇혀 있는’ 구조가 되는 거죠.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의 경우, 사방이 아스팔트 도로로 둘러싸여 있으니 아스팔트 도로 및 지나가는 차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정류장에 갇혀있게 되는 셈입니다.

●같은 도심 온도 차 4도… 절실한 녹지
버스정류장 다음으로는 아스팔트 도로, 흙 놀이터, 그늘 쉼터 순으로 평균기온이 높았습니다. 기상청은 “그늘 쉼터는 종일 햇볕이 들지 않는 등나무 그늘 아래라 다른 곳보다 기온이 낮고 햇볕에 의한 기온 변화 폭도 적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 지부 쿠팡 물류 센터지회 노조원들이 17일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폭염 속 물류센터 현장을 고발한다, 온도감시단 활동 보고 및 서명운동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그 외 두 번째 그룹인 공원 녹지, 도심 소공원, 도심 주택, 도심 아파트에서도 장소에 따라 온도 차가 꽤 났네요. 공원녹지의 지상 1.5m(최고기온 33.6도)와 도심 주택지역(최고기온 37.7도)은 약 4도 이상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기상청은 “도심 주택지역은 건물이 밀집하고 바닥이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으로 돼 있어 종일 햇볕에 노출돼있다. 반면 소공원이나 공원 녹지는 나무 그늘이라 폭염시 쉼터로 활용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활하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렇게 같은 도심 지역에서도 어떤 장소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더위는 큰 차이가 납니다.

올해 온열질환 감시를 시작한 5월 20일부터 이달 14일까지 누적 온열질환자는 2244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409명)보다 59.2% 급증했다고 합니다. 이중 실외 작업장, 논밭 등 실외에서 전체 환자의 79.2%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내리는 폭염특보에 무심해질 수 있지만 오후 한낮엔 야외 작업이나 활동을 피하고, 장소별로 맞춤형 폭염 쉼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식힐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먼저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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