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세계서 이민자에 가장 관대… 영국-네덜란드-아일랜드인 등 수용
식민 지배로 알제리인 많은 프랑스… 종교-복장 규제로 갈등 겪기도
독일 국민 24%는 이민자로 구성… 저출생-고령화 해결 동력으로 작용
한국은 이민자 비율 4%대에 불과… 인구 문제 해결 위해 변화 필요
얼마 전 입추가 지나며 절기상으론 이미 가을입니다만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 무더운 이 8월에 저 멀리 미국 남부 농장에서는 목화 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 초기의 목화 산업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목화솜과 씨앗을 분리하는 일이 비효율적이라 목화솜의 생산량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1793년 목화솜과 씨앗을 빠르고 편리하게 분리해 주는 ‘조면기’의 개발과 함께 목화솜의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대됩니다.
이때부터 목화산업은 큰돈이 되었고 미국은 목화 농장에서 일할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흑인 노예들이 이 일을 맡게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노예가 노예선에 실려 미국 땅을 밟게 되었고 그렇게 이민 국가 미국은 형성되어 왔습니다. 오늘의 세계지리 이야기는 이런 이민에 관한 내용입니다.
●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
미국은 그 시작부터 이민과 함께였습니다.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인의 이민을 시작으로 19세기에는 아일랜드인이 대규모로 이민하게 됩니다. 아일랜드에서는 19세기 중반 감자마름병으로 당시 주식인 감자가 극단적으로 부족해졌고, 100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굶어 죽게 됩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굶주림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한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독일인이 미국으로 옵니다. 독일인의 이민 직후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독일과 싸우게 되면서 독일계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당시 독일계 이민자들은 독일 출신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 등을 숨겼고 오늘날 미국의 독일계 이민자 후손들은 다른 이민자 후손들보다 미국 사회에 더욱 완벽하게 동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이민 정책은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민에 대해 관대했고 지금도 세계에서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입니다. 과연 이민으로 완성된 국가답습니다.
● 관용과 원칙의 공존, 프랑스
프랑스 하면 ‘톨레랑스(Tolerance)’의 나라입니다. 톨레랑스는 ‘관용’이라는 뜻으로 다른 문화, 생각, 믿음 등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다른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과 갈등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프랑스는 이민자들과 큰 갈등을 겪는데, 이는 톨레랑스 이면에 자리 잡은 ‘라이시테(Laïcité)’ 때문입니다. 라이시테는 누구든 프랑스 공화국의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라이시테에 따라 프랑스 시민들은 개인의 문화, 생각,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프랑스 사회의 공적인 제도와 원칙이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특정 종교에 관한 행위나 복장을 금지하고 있고 이는 주로 이슬람교 신자로 구성된 이민자들에게는 억압과 통제로 다가오게 됩니다.
특히 프랑스에는 프랑스 식민 지배를 겪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라이시테와 이들에 대한 은근한 차별은 프랑스 사회의 갈등 요소로 남아 종종 이민자들의 대규모 시위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국을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라고 부르지만, 사실 미국은 각 문화의 다양성이 유지되며 어우러진 문화의 샐러드와 같은 국가입니다. 반면 프랑스야말로 여러 인종과 문화가 라이시테 아래에 녹아들기를 원하는 용광로에 가깝습니다.
● 저출산 독일, 국민 24%는 이민자
현대 유럽에서 이민자에게 가장 개방적인 국가는 독일입니다. 독일 국민의 24% 정도가 이민자들입니다. 이웃한 프랑스는 이민자 비율이 10%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독일이 얼마나 이민에 친화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시리아,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독일로 이민을 오며 독일 정부는 이민자의 독일어 교육부터 취업 연계까지 이민자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독일 사회가 겪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있습니다. 독일의 합계출산율은 1.4명가량이며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이미 28%를 넘은 초고령사회입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노화되어 가는 독일은 경제 활성화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민자들에게 그 동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방적인 이민 정책 이면에는 독일 사회의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 韓 저출산 고령화 해결 위한 해법 될까
독일보다 저출생 문제가 더욱 심각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대이며 2040년경이 되면 독일보다 노화된 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 역시 이민을 통한 새로운 미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이민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국가 기관이 없습니다. 법무부부터 여성가족부까지 다양한 정부 기관이 저마다 따로 이민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이민청이나 이민국 등 이민 정책을 주도적으로 끌어나갈 국가 기관이 필요합니다. 둘째, 우리 사회가 이민자에 대해 갖는 경계심과 배타성입니다. 저는 이것을 ‘코리엔탈리즘(Koreantalism)’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본래 서구인들이 동양에 대해 갖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부릅니다. 오리엔탈리즘처럼 우리 사회가 이민자들에 대해 갖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코리엔탈리즘인 것입니다. “이민자들은 범죄를 자주 저지를 거야” “이민자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빼앗을 거야” 등이 코리엔탈리즘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문화, 생각 등이 부딪히면 갈등이 없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민자 비율이 불과 4%대에 불과한 우리 사회가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제 우리 안의 코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이민에 대한 개방적인 관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생각의 전환이 사회 제도로 이어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인구 문제에 따른 사회적 문제 현실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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