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기온이 34도까지 오르면서 전국에 폭염이 기승을 부린 이날 계곡 일대는 더위를 피해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피서객들로 북적였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부터 어린 자녀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려는 가족까지 모여 계곡 곳곳에선 피서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곡에서 구명조끼 없이 물놀이를 즐기거나 발이 안 닿는 웅덩이에 일행을 빠뜨리는 등 위험천만해 보이는 행동도 목격됐다. 구명조끼를 입고 왔던 일부 피서객들은 다이빙을 하기 직전 “갑갑하다”며 구명조끼를 벗기도 했다.
이날 동아일보 기자는 물놀이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가평소방서 소속 소방대원들과 안전체험에 나섰다.》
● 구명조끼 착용은 선택 아닌 필수
이날 안전체험이 이뤄진 장소는 피서지로 유명한 가평의 한 계곡이었다. 지난달 27일 일가족 3명이 급류에 휩쓸렸다 구조됐던 지점으로부터 약 1km 거리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가 온 지 나흘이 지난 계곡은 물가에서 얼핏 보기엔 수심이 얕아 보였다. 물이 맑고 투명해 바닥에 있는 돌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깊은 곳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본보 기자가 “물이 별로 깊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동행한 소방대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바닥이 안 보이는 부분은 수심이 4m에 달한다”고 했다.
계곡물에 들어가기 전 소방대원들은 두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하나는 기상 예보를 확인하는 것. 다음은 반드시 구명조끼를 입고 입수하는 것이다.
가평 계곡 일대에서 안전사고 예방 활동을 하는 이성갑 소방장(36)은 “산에는 비가 내리면 하천 쪽으로 물이 몰리며 순간적으로 계곡물이 불어난다”며 “기상 예보를 확인해 비가 오기 시작하면 절대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비가 오고 최소 2, 3일이 지난 후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게 좋다고도 했다. 이 소방장은 “비가 와 물이 불어나면 지역 주민들도 수심을 예측하지 못한다”며 “비로 인해 불어난 물이 빠지는 사흘 후부터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해도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소방대원들은 입수 전에 반드시 구명조끼를 입을 것도 강조했다. 기자가 “수영을 잘하는 편인데 구명조끼를 꼭 입어야 하느냐”고 묻자 윤세규 소방사(34)는 “계곡에서 일어나는 사망 사고 대부분은 소용돌이(와류)에 휩쓸려 발생한다”며 “훈련받은 소방관도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에 구명조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했다.
● 일행이 물에 빠져도 절대 뛰어들면 안 돼
기자는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입수했다. 계곡물에 조금씩 깊이 들어갈수록 투명했던 바닥이 사라졌고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구명조끼의 도움으로 물 위에 떠 있을 순 있었지만 소용돌이가 발생해 휩쓸리면 헤엄쳐 나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깊은 곳에 도착한 후 안전체험을 시작했다. 소방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손을 높이 뻗으며 “살려달라”고 소리치자 이종연 소방사(30)는 계곡 곳곳에 비치된 구조용 구명환(튜브)을 기자에게 던졌다. 튜브에 매달리자 소방대원들은 부착된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불과 20초도 안 되는 사이에 물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 때는 이처럼 주변에 있는 물건을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물에 뛰어들어 구조하려다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전국 주요 계곡에 인근 소방서에서 구명환과 구조·구명 로프 등을 배치해 놓는 만큼 미리 비치된 장소를 눈여겨봐 놓으면 위급 상황 시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소방장은 “소방대원들도 직접 들어가 구조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라며 “일반인이 급류에 뛰어들어 일행을 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 “주변에 구명환이 없다면 옷 여러 개를 엮어 구조용 줄로 만들어 사용하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 주변의 빠른 신고가 생명 구한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안전체험은 구명환을 던져 구조하는 데 실패한 상황을 가정했다. 윤 소방사는 헬멧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로프를 몸에 건 채 물에 뛰어들어 기자를 구조했다. 기자는 윤 소방사가 가져온 로프에 매달려 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 체험에 동행한 소방대원들은 체험이 진행된 계곡에서 지난달 급류에 휩쓸렸던 일가족을 직접 구조했다. 당시 물놀이를 하던 어머니와 딸(11)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아내와 딸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아버지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구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함께 떠내려갔다. 다행히 계곡 중심부에 있던 바위에 걸리며 겨우 목숨을 건졌고 소방대원들의 도움으로 계곡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소방장은 “신고를 받고 도착해 몸에 로프를 감고 구명환을 하나 들고 입수했다”며 “물 흐름이 워낙 강해 물 밖에서 여러 구조대원들이 로프로 지탱해 줬다”고 돌이켰다. 또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아 제일 위급한 어머니를 먼저 구하고 딸과 아버지 순서로 세 번 물 안팎을 오가며 구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가족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이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인근 펜션 사장의 빠른 신고 덕분이었다. 이 소방장은 “구명환을 던져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먼저 119 신고부터 해야 한다”며 “여름철엔 계곡 인근에 소방대원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으니 발견 즉시 빠르게 신고하면 인명을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 바닷가 물놀이 이안류 휩쓸림도 주의해야
최근 막바지 휴가철을 맞아 계곡과 하천, 해수욕장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안전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광복절까지 징검다리 휴무가 이어졌던 지난 주말에는 강원도에서만 해수욕장과 계곡, 수영장에서 발생한 물놀이 사고로 4명이 목숨을 잃었다.
계곡이나 하천이 아닌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들은 ‘바다의 물귀신’이라고 불리는 이안류(離岸流·역파도)를 조심해야 한다. 파도가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이안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올 6월에도 제주도 바다에서 이안류에 휩쓸린 20대 남성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여름철에 이안류에 휩쓸리면 바다 수영에 능숙한 사람도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이안류 예보를 잘 살핀 뒤 안전한 물놀이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상청은 현재 전국 8개 주요 해수욕장을 대상으로 이안류 예보를 제공하고 있다.
바다에서 물놀이 도중 이안류에 휩쓸렸다면 △절대 이안류를 거스르려 하지 말고 △이안류가 발생한 방향에서 45도 방향으로 헤엄쳐 이안류 흐름에서 벗어난 뒤 △해안가로 헤엄쳐 오거나 튜브를 잡고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이안류는 평균 3분가량 유지된다고 한다. 그런 만큼 파도에 휩쓸렸을 때 당황하지 말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물에 떠 있는 생존수영을 하면서 차분히 구조를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표적 생존수영 방법인 ‘누워뜨기’는 몸에 힘을 빼고 귀가 수면에 잠기도록 누운 채 가슴과 허리를 펴고 양팔은 넓게 벌려 몸 전체를 띄우는 자세다. 물에 빠졌을 때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며 물에 오래 떠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생존수영 방법인 입영은 물속에서 서 있는 자세로 손과 발을 움직이며 하는 수영이다. 코와 입만 물 밖으로 내놓은 상태에서 손과 발을 너무 급하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면 오래 물에 떠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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