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정당현수막인가[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0일 14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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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일대에 여러 정당에서 내건 현수막이 어지럽게 설치돼 있다. 인천시 제공
공승배 기자
공승배 기자
“상위법 위반 논란이 있는 조례로 정당현수막을 철거했다가 문제가 되면 그 민·형사상 책임은 과연 누가 떠안아줄까요. 그 누구도 책임져줄 수 없는 현장 공무원들 몫인거죠.”

최근 정당현수막 강제 철거가 위법의 소지가 있다며 업무 이행에 반대했다가 인천 미추홀구청에서 일선 행정복지센터로 전보 조치된 6급 공무원 A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사 조치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추홀구는 보복성 조치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지휘부 지시에 불응했다가 보직도 없이 인사 조치된 A 씨는 “사실상의 강등”이라고 받아들이며 억울해했다.

문제의 시작은 지난해 12월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이었다. 정당현수막의 게시 장소와 수량을 제한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정당현수막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천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정당현수막도 지정 게시대에만 설치하도록 하는 등 조례를 개정해 지난달부터 강제철거에 나섰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현행법상 정당현수막과 관련해 자치단체에 위임한 조항이 없어 조례가 상위법에 어긋난다”며 대법원에 제소했고, 인천시의회도 “규제 없는 정당현수막 설치가 헌법상 시민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며 맞서고 있다.

지난달 12일 오전 인천 연수구청 직원들이 연수구 소금밭 사거리에서 정당 현수막을 강제 철거하고 있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그 사이 현장에서 현수막을 철거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시 조례를 두고 법적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휘부는 강제 철거를 지시하고, 정당에서는 고소·고발까지 운운하며 강제 철거에 반대하니 주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철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컸다. 강제 철거 초기부터 이어지던 이런 우려는 결국 A 씨의 인사조치로 이어졌다.

취재를 하며 만난 대부분의 시민은 정당현수막 강제 철거를 반겼다. “상대방을 비방하기 바빴던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이 사라지니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간 정당현수막을 바라보던 시민들의 시선이 얼마나 곱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전국 17개 시·도지사들도 정당현수막 설치에 제한을 없앤 옥외광고물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고, 인천시 조례에 제동을 건 행안부조차 정당현수막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만 예외인 듯하다. 현재 국회에는 정당현수막의 설치 장소와 개수 등을 다시 제한하도록 하는 옥외광고물 관련 개정안이 7건 발의돼있지만 모두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정당현수막인 줄 모르겠네요.”

취재하며 만난 한 시민이 “정당현수막에 반감만 커지고 있다”며 한 말이다.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정당현수막이 오히려 반감을 사고, A 씨 경우처럼 현장의 갈등만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순기능마저 가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정당현수막 관련 법 개정에 나서 본래 취지를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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