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직선거리로 500m가량 떨어진 이곳에선 휴일임에도 평소와 달리 등산객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공원 등산로에서 만난 이애자 씨(79·여)는 “50년 넘게 산책 다니던 길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이라며 “등산로 맞은편에서 누가 오면 혹시 흉기 같은 건 없는지 손부터 보게 된다”고 했다.
이 씨는 이날 다른 등산객 2명과 함께였는데 한 등산객의 가방에는 플라스틱 호루라기가 달려 있었다. 이 씨는 “샛길로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로만 다니려 한다”고도 했다.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등에서 흉기를 이용한 범죄가 이어지면서 수도권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주택가, 공원, 번화가, 지하철 열차 등을 가리지 않고 흉악 범죄가 발생하면서 노약자를 중심으로 주말에 아예 외출을 삼가는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 혼자 다니는 사람 사라진 거리
지난달 21일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현장과 17일 성폭행 살인 사건 현장 사이에 있는 서울 관악구 미성동 도로에는 혼자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1년째 이곳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 중인 박하현 씨(42·여)는 “원래 토요일에 가장 손님이 많은데 19일 매출은 지난주에 비해 반토막 났다”며 “번화가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오가는 주택가 공원에서 강력 범죄가 발생하는 걸 보니 나조차 가게에 나오기가 무서웠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8년 넘게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했다는 안모 씨(50)는 20일 “인근에서 흉악 범죄가 이어지면서 집을 구하는 사람 발길이 끊겼다”며 “반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주민들만 가끔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달 3일 최원종(22)의 차량 및 흉기 난동이 발생한 서현역 인파도 평소에 비해 부쩍 줄어든 모습이었다. 회사원 장성욱 씨(31)는 “매일 지하철을 이용해 서현역 근처 회사로 출퇴근했는데 사건 이후 아내의 권유로 자동차로 오가고 있다”며 “모방 범죄도 계속 벌어지는 것 같아 최대한 조심하려 한다”고 했다.
분당구 이매동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 씨(59)는 “4월 정자교 붕괴, 6월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에 이어 백화점 흉기난동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호소했다.
● “경찰 일선 순찰 인력 부족”
윤희근 경찰청장은 서현역 사건 직후인 4일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다”며 전국에 비상령을 내렸지만 살인 예고와 흉기난동 등은 멈추지 않고 있다.
주말인 19, 20일에도 인천경찰청, 대전경찰청, 목포경찰서에서 살인예고 또는 흉기난동 예고 글 작성자가 붙잡혔고 서울지하철 2호선에선 흉기난동이 벌어졌다. 관악구 봉천동에선 고교 1학년 김모 양(15)이 17일 등교하러 나선 뒤 나흘 째 연락이 끊겨 경찰이 사진과 인적사항을 공개하고 수색 중이다.
국민들의 치안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 걸 두고 경찰 하위직 인원 부족이 원인 중 하나란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이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국 18개 시도경찰청 모두 순경 인원이 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특히 서울경찰청의 경우 순경 정원 9535명 중 절반가량인 4626명(48.5%)이 부족한 상태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의 경우 순경 바로 위인 경장과 경사 역시 정원보다 인원이 15~25% 부족했다.
반면 경감과 경위 등 간부 인원은 정원보다 많았다. 서울경찰청의 경우 경감은 5059명으로 정원(2020명) 2.5배에 달했고, 경위는 8456명으로 정원(3821명)의 2.2배가량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가뜩이나 하위직이 부족한데 의무경찰 제도 폐지 후 집회 시위 등에 인력이 많이 투입되다 보니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의 경우 순찰 인력이 부족해 허덕이는 상황”이라며 “순경을 대폭 늘리기 어렵다면 간부들을 더 적극적으로 현장에 투입해야 범죄 예방에 성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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