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한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입니다. 서울시청은 그래서 ‘작은 정부’라 불리는데요, 올해 예산만 47조2052억 원을 쓰고 있답니다. 25개 구청도 시민 피부와 맞닿는 정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또는 서울을 여행하면서 ‘이런 건 왜 있어야 할까’ ‘시청, 구청이 좀 더 잘할 수 없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본 적이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그런 의문을 풀어드리는 ‘메트로 돋보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회부 서울시청팀 기자들이 서울에 관한 모든 물음표를 돋보기로 확대해보겠습니다.
“서울의 새 얼굴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모여서 만드는 서울,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을 공개합니다!”
16일 서울시청 신청사 다목적홀에서 서울시의 새 브랜드가 발표됐습니다. 발표자로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서울의 새 얼굴’을 공표했습니다. 새 브랜드 개발을 위한 서울시의 1년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 겁니다.
새 브랜드 디자인은 알록달록한 색깔에 하트, 느낌표, 스마일 표시 등 그림문자인 픽토그램이 더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브랜드 로고의 모습은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서울시의 관광재단 등에서 활용하던 관광브랜드인 ‘마이 소울 서울(My Soul Seoul)’이었습니다.
왼쪽은 서울시가 지난해 5월부터 국내외 관광 홍보영상, 인쇄물 등에 활용해온 관광브랜드 ‘마이 소울 서울’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이 출연한 서울시 홍보 영상에도 사용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은 이달 따끈따끈하게 발표된 서울시의 신규 브랜드 ‘서울 마이 소울’입니다.
어떻게 보이시나요? 자세히 뜯어보면 차이가 보이지만, 언뜻 봐서는 거의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두 디자인 사이에 1년이라는 시간과 억대 예산이 들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서울의 새 얼굴은 어쩌다 기존의 관광브랜드와 이렇게 닮은 얼굴을 하게 된 걸까요?
●우여곡절 끝에 기존 관광브랜드 재활용
오세훈 시장은 2021년 보궐선거 당선 후 슬로건 교체를 추진했습니다. 2015년 박원순 전 시장 때 정한 서울시 슬로건 ‘아이 서울 유’(I SEOUL U)에 대한 낮은 시민 호감 및 인지도가 이유였습니다. 오 시장은 6월 시의회 시정질문에서 “보궐선거로 서울시에 다시 들어온 첫날 (슬로건을) 바꾸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서울의 가치 찾기’ 단어 공모전을 열고 시민이 생각하는 서울의 정체성을 찾았습니다. 이후 브랜드 슬로건을 개발했고, 4가지 안에 대한 1·2차 선호도 조사를 거쳐 올 4월 ‘서울 마이 소울’이 최종 선정됐습니다.
어렵게 브랜드 슬로건을 정했지만, 난관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5월 서울시가 ‘서울 마이 소울’을 활용한 디자인 시안 4개를 발표하자 혹평이 쏟아집니다. 시민들은 “고를 게 없다” “20년 전 스타일 같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차라리 ‘아이 서울 유’가 낫다”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서울시는 여론을 반영해 즉각 새 슬로건의 디자인 제작을 위한 시민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그 결과 760점의 공모작이 접수됐습니다. 서울시는 17명의 전문가 심사를 거쳐 시민 공모 우수 디자인 3점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최종 선정된 디자인은 공모전 우수작이 아닌, 기존에 사용하던 서울시 관광브랜드 다자인이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 공모 우수작 3점, 용역업체 수정 디자인 3점, 그리고 그간 시민들의 호응이 좋았던 서울시 관광브랜드 디자인까지 총 7점을 대상으로 최종 심사를 한 결과, 관광브랜드 디자인을 수정해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공모전까지 진행했음에도 고민 끝에 기존에 쓰던 디자인을 재활용하는 방향을 택한 겁니다.
차별화가 관건이었습니다. 16일 서울시 신규 브랜드 발표를 맡은 홍성태 브랜드 총괄관은 “(기존 관광브랜드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지만 굉장히 많이 바꿨다”라며 “우선 색의 채도를 높여서 훨씬 밝고 경쾌하다. 그리고 예전에 독일어 움라우트(Ü)처럼 보이는 미소를 미소답게 바꿨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서울의 ‘E’ 등 알파벳을 안정감 있게 전반적으로 수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종로구 직장인 최모 씨(29)는 “기존 관광브랜드와 이번 새 브랜드 디자인이 어디를 손본 건지 모를 만큼 똑같아 보인다”라며 “굳이 따지자면 색깔이 조금 변경된 것 같은데, 색깔만 바꿔서 다시 재활용할 거면 1년 동안 시민투표와 공모전 등은 왜 진행한 건지 모르겠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시민 이모 씨(27)는 “시민 투표를 받았던 디자인이 워낙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정해졌다는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새 브랜드가 나온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결국 채택된 건 기존에 이미 사용하던 관광 브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의아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전 국민이 디자이너는 아니지 않나. 색깔이 얼마만큼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일반 시민들에게 잘 와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기존 브랜드를 변주하는 데에 따른 순기능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브랜드 개발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기업이나 기관이 새 브랜드를 개발하면 소비자에게 각인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라며 “기존에 호응이 좋은 브랜드를 발전시켜 활용하는 건 효율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85만명 참여, 예산 3억… 전문가 “한번 만들어 오래 사용해야”
문제는 신규 브랜드를 내놓기까지 들인 시간과 자원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 브랜드 선정 과정에는 브랜드 슬로건 선호도 조사, 브랜드 디자인 시민 공모 및 투표, 브랜드·마케팅 등 분야별 전문가 자문 등을 포함해 85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해 꼬박 1년의 시간 동안 신규 브랜드 개발을 위해 들어간 예산도 약 3억 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8월 1억 5000만 원의 서울 신규 대표브랜드 개발 용역을 비롯해 슬로건 및 디자인 선호도 조사, 세부 디자인 개발 및 보완 작업 등에 들어간 비용입니다.
신규 브랜드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들인 시간과 자원의 효과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도시 브랜드 자체가 너무 자주 달라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도시 브랜드는 도시의 정체성”이라며 “도시의 정체성은 시장의 임기가 끝났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한 번 정한 브랜드를 오래 사용하는 것이 도시의 경쟁력을 위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2억 50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해 서울 신규 브랜드 마케팅 용역 공고를 냈습니다. 새로 정해진 브랜드 홍보를 위한 사업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규 브랜드가 된 ‘서울 마이 소울’. 긴 시간 동안 여러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만큼, 이번에는 부디 오랫동안 서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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