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일상으로, 공간복지]〈1〉 대구 삼덕마루 작은도서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교장 관사… ‘청산’ 대신 공공도서관으로 활용
역사성 지닌 문화교육공간 탄생
좁은 마루-다다미방까지 그대로… 다락방에 편안히 누워 책 읽기도
“주민들 휴식처이자 회의 공간”
28일 오후 대구 중구 삼덕동의 한 골목길.
삼덕초등학교 뒤편 주택가를 지나는데 일본식 가옥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독특한 문양의 나무 벽면, 한옥과는 다른 지붕 기와 등이 인상적인 이곳은 삼덕마루 작은도서관이다.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마루에 일본식 돗자리 다다미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은 바닥에 자유롭게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었다.
아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은 김선미 씨(42·여)는 “휴가를 맞아 일본식 숙박시설 ‘료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심 속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김 씨의 아들 최지훈 군(12)은 다락방으로 올라가 학원 숙제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최 군은 “시골 할머니집에 간 것처럼 아늑한 느낌이 든다. 엄마에게 자주 오자고 할 것 같다”며 웃었다.
● 일제 잔재 논란 딛고 공간복지 모델로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건물 형태인 삼덕마루 작은도서관은 적산 가옥이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8월 16일 대구덕산공립심상소학교 교장 관사로 건축됐다. 광복 이후에는 삼덕초 교장들의 관사로 활용됐다.
하지만 일제 잔재 논란이 끊이지 않아 2000년 이후에는 사실상 방치됐다. 2013년 근대 교육시설로서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581호로 지정됐으나 시민 상당수의 반응은 싸늘했다. 광복 후 일본인들이 떠나면서 남겨 놓고 간 건물이기에 청산해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구 중구는 이 건물이 가진 역사성과 공간적 가치에 주목했다. 중구 관계자는 “공간복지적 측면에서 가능성이 보였다”고 했다. 공간복지는 체육시설이나 도서관, 노인정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회간접자본(SOC)시설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2014년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건물을 넘겨받은 중구는 이곳에 문화교육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중구 관계자는 “비록 일본인들이 남긴 건물이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뛰어넘어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다며 시민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 동네 사랑방으로 재탄생
중구는 3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 2017년 7월 삼덕마루 작은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근대 유산인 적산 가옥이 공공 도서관으로 활용된 첫 사례였다.
삼덕마루 작은도서관은 일본식 가옥의 특색을 그대로 갖고 있다. 좁은 마루에 다다미방이 5개 딸려 있고, 방 2곳에는 다락방까지 갖췄다. 일반열람실과 어린이열람실, 유아열람실 등에 현재 도서 5055권을 보유하고 있다.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다미방 한쪽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완구나 보드게임 등도 갖추고 있다.
삼덕마루 작은도서관은 평생학습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현재 성인을 위한 뜨개질과 중국어 강좌, 필사 수업 등이 진행된다. 어린이를 위한 종이접기, 독서, 그림책 만들기 등도 이뤄진다. 총 7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강습비는 전액 무료다. 도서관에서 만난 주민 최미정 씨(39·여)는 “올여름 더위가 심했을 때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사랑방 역할을 했고, 회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삼덕마루 작은도서관은 2019년 공간복지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공간복지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다고 한다. 김경아 관장은 “적산 가옥을 연구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들도 방문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과거 이곳에서 거주했다는 일본인 교장선생님의 손자가 찾아와 반갑게 맞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중구는 삼덕마루 작은도서관의 성공을 계기로 대구 구도심을 활용한 공간복지 시설을 더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류규하 구청장은 “공간복지는 낙후된 주택가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면서 지속적으로 공간복지 장소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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