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로 한글을 깨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이번엔 래퍼로 변신했다. 전쟁의 아픔과 배우지 못한 서러움, 노년의 외로움 등을 경쾌한 리듬의 랩 가사로 표현했다.
31일 칠곡군에 따르면 시 쓰는 할머니로 알려진 칠곡군 지천면 신4리 할머니들은 전날 마을 경로당에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 창단식을 열었다.
‘수니와 칠공주’는 그룹 리더인 박점순 할머니(85) 이름 가운데 마지막 글자인 ‘순’을 변형한 ‘수니’와 일곱 명의 멤버를 뜻한다.
아흔이 넘은 최고령자 정두이 할머니(92)와 여든을 바라보는 최연소 장옥금 할머니(75)까지 총 여덟 명으로 구성됐다. 평균 연령은 85세다.
할머니들은 앞서 칠곡군이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워 시를 썼다. 일부는 대통령 글꼴로 알려진 칠곡할매글꼴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랩 공연을 위해 자신들이 썼던 시를 랩 가사로 바꾸고 음악을 입혔다. ‘환장하지’ ‘황학골에 셋째 딸’ ‘학교 종이 댕댕댕’ ‘나는 지금 학생이다’ 등의 제목으로 과거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아쉬움을 드러냈다.
‘들깻잎’이라는 노래로는 고인이 된 깻잎전을 좋아했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또 6·25전쟁 당시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오해했다는 ‘딱콩 딱콩’과 북한군을 만난 느낌을 표현한 ‘빨갱이’ 등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노래했다. 이필선 할머니(87)는 “성주 가야산에서 북한군을 만나기 전에는 빨갱이는 온몸이 빨갛다고 생각했었다”며 “랩을 부를 때마다 그날의 아픔이 떠오른다. 랩으로 전쟁의 고통과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랩 선생님은 공무원이 되기 전 한때 연예인을 꿈꿨던 왜관읍 안태기 주무관이 맡았다. 안 주무관은 2주에 한 번 마을 경로당을 찾아 재능 기부에 나선다.
할머니들의 한글 선생님인 정우정 씨도 밀착 지도를 위해 랩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등 두 팔을 걷어붙였다.
‘수니와 칠공주’는 초등학교와 지역 축제 공연을 목표로 맹연습에 돌입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칠곡 할머니들이 증명하고 있다”며 “한글 교육으로 시작된 칠곡 할머니들의 유쾌한 도전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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