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년범 5년새 8500건 급증… 방치땐 성인흉악범 늘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일 03시 00분


소년범 5년새 8500건 급증… 방치땐 성인흉악범 늘 우려
소년원서 또래들에 범죄수법 배워
재범률 12%… 성인의 두배 이상
신림동 흉기난동범도 소년범 전력

부모 이혼 후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A 군(10)은 올 초 말다툼을 벌인 뒤 할아버지를 흉기로 찔렀다. “게임을 그만하라”는 할아버지의 지적에 화를 참을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A 군은 특수상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가정법원 조사관의 판단이 받아들여져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31일 법원통계월보 등에 따르면 지난해 A 군처럼 소년범으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4만2082건으로 2017년(3만3584건)보다 약 25%(8498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7월까지 월평균 3884건이 접수돼 지난해 월평균보다 10% 이상 늘었다. 연말까지 5만 건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범죄를 저지르는 나이도 점차 어려지는 추세다. 소년범 중 만 14세∼19세 미만으로 형사처벌 대상인 ‘범죄소년’ 수는 2017년과 지난해 사이에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만 10세∼14세 미만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은 같은 기간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소년범처럼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음주 후 소란을 피우는 등 ‘향후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고 분류된 만 10세∼19세 미만 ‘우범소년’ 사건도 같은 기간 526건에서 960건으로 약 83% 늘었다.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발달이 빨라진 것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립, 폭력적인 미디어 노출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촉법소년의 범죄 유형을 보면 상습 절도와 차량 강탈 등이 많다. 온라인 등에서 관련 정보를 접하기 쉬워진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소년범이 적절한 교화가 이뤄지지 않아 성인 흉악범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년범의 경우 최근 10년간 재범률이 약 12%로 성인(약 5%)의 두 배 이상이다.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에서 또래 소년범들과 어울리며 네트워크가 생기고 범죄를 학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7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번화가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인 조선(33)은 미성년자 시절 소년부로 송치된 전력이 14건이나 있었다.

전문가들은 교정 시스템과 인프라를 확충해 소년 범죄가 흉악 범죄로 이어지는 고리를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년범 재판 경험이 많은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막상 법정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 덩치만 컸지 정신은 아직 어린아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며 “소년범의 경우 향후 수십 년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만큼 강한 처벌보다 효과적인 교화 수단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관 1명이 소년범 80명 맡아… “전화확인 급급” 사실상 방치


소년범 5년새 8500건 급증… 전국 법원 가사조사관 221명 그쳐
7곳 없고, 23곳 1명이거나 순환근무
‘소년범 수용’ 정신의료기관 1곳뿐
“교육-복지 등 종합예방시스템 시급”

전문가들은 소년범이 급격하게 늘고 있지만 이들을 교화하기 위한 인력과 인프라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 “조사 대상 90%는 전화로 파악”
가정법원 소속 공무원인 가사조사관이 대표적이다. 가사조사관은 소년·가정·아동 사건 관련자를 면담하고 조사한 후 처분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낸다. 소년 사건의 경우 보호조치가 끝난 청소년들을 관리하고 감독해 재범을 막는 역할도 한다.

법원행정처의 ‘전국 법원 조사관 현황’에 따르면 전국 가정법원과 지방법원, 지원 53곳에 배치된 조사관은 올 4월 기준으로 221명에 불과하다. 법원 7곳에는 아예 조사관이 없었고, 법원 23곳에는 조사관이 1명뿐이거나 다른 법원 조사관이 함께 맡고 있었다. 인력이 가장 많은 서울가정법원조차 조사관 1명이 약 80명의 소년범 사건을 담당하는 실정이다.

서울가정법원 박희수 가사조사관은 “아이들을 직접 만나 상황을 살피고 적절한 교화 방식을 택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선 불가능하다”며 “만나지 못하고 전화 조사를 하는 경우가 90%”라고 토로했다. 또 “아이들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관심을 가져주기만 해도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크게 낮아진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인프라도 부족하다. 소년범 중에는 정신질환을 앓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집중 치료가 필수적인데 소년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신의료기관은 대전에 1곳뿐이다. 나머지 병원들은 감시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입원을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로 나오기 전 교화 목적으로 수용되는 소년보호시설 역시 자리가 부족하다.

한 가정법원 관계자는 “일부 소년범은 자리가 부족해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이 갖춰진 보호시설에 가지 못하고 임시시설인 소년분류심사원에 배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일본은 활동 조사관 1600명
일본의 경우 한국의 가사조사관에 해당하는 가재조사관이 약 1600명 활동 중이다. 가재조사관은 시험을 통해 선발하며 2년간 연수를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되는데, 이 역시 5주 교육을 받은 후 투입되는 한국과 격차가 크다. 법원행정처는 일본과 비슷한 역할을 하려면 가사조사관을 450명 이상 증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통합가정법원’을 운영한다. ‘한 가족 한 판사’ 시스템에 따라 특정 가족의 여러 사건을 한 재판부가 담당한다.

처벌보다 개선에 초점을 둔 ‘치료사법’도 적극 활용 중이다. 치료사법은 소년범의 가정환경과 성향, 부모의 경제적 여건 등을 전문가들이 복합적으로 살피고 그에 맞는 교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정법원 소년부를 만든 건 일반 형사법정에서 소년범을 처벌했을 때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당초 소년부의 취지는 판사 혼자 판결을 내리는 게 아니라 교육, 심리, 정신건강, 복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소년범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은 인력 부족 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개선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년범
범죄를 저지른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 만 14세 이상 19세 미만으로 형사처벌 대상인 범죄소년과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촉법소년을 합쳐 소년범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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