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아니라고요?” 79세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은 김 모 씨는 의사의 진단에 화들짝 놀랐다. 어머니는 분명 치매 증상을 보이셨다. 집 현관 비밀번호도 자꾸 잊어버리셨고 옷에 소변 실수도 하셨다.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워지고 가끔 넘어지기도 하셨다. 김 씨는 당연히 치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는 어머니의 병명이 치매가 아닌 ‘정상압 수두증’이라고 했다.
이름부터 생소한 정상압 수두증은 70세 이상 노인 100명 중 2명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환이다. 뇌 안에 차 있는 뇌척수액이 정상보다 많이 차게되면 생기는 질환으로, 증상이 치매와 유사해 김 씨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증상은 바로 이상한 걸음걸이다. 작은 보폭으로 발을 질질 끌며 넘어지는 일이 잦고 균형도 잡기 힘들어진다. 또 절박뇨 증상을 보여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옷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또 치매 환자처럼 기억을 잘 못하고 무기력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치매와는 달리 정상압 수두증은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보통 정상압 수두증 환자에게 시행하는 수술은 ‘뇌실-복강 단락술’이다.
‘뇌실-복강 단락술’은 두개골에 구멍을 내 뇌실과 복막 사이에 플라스틱 관을 끼워 뇌척수액이 심방이나 복강으로 흐르도록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이신헌 중앙대학교 신경외과 교수는 “복강 안에는 그 장기들을 둘러싸고 있는 복막이라는 생체막이 있는데, 이 생체막은 우리 몸에서 어느 정도 체액이 나오더라도 자연 흡수시킬 수가 있기 때문에 뇌척수액을 복강으로 빼낸다”며 “정상압 수두증 환자들은 뇌척수액의 밸런스가 깨져 있기 때문에 뇌척수액이 빠져 흡수될 수 있도록 또 다른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뇌실-복강 단락술’은 3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수술시간과 수술 후 7일 정도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전신마취를 하고 두개골에 구멍을 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중앙대학교병원 박용숙, 이신헌 신경외과 교수팀은 경북의대 박기수 교수와 협업해 지난 8월 초부터 정상압 수두증 환자에게 허리에서부터 복강 내로 우회로를 연결해 수술하는 ‘요추-복강 단락술’을 실시하고 있다.
‘요추-복강 단락술’은 ‘뇌실-복강 단락술’과 달리 머리에 구멍을 내지 않고 요추 쪽으로 관을 삽입하기 때문에 국소마취로도 시행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신마취 고위험군 환자에게도 수술을 할 수 있다.
박용숙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정상압 수두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에 방치하지 말고 조기에 증상을 면밀하게 관찰해 적극적인 검사를 시행하여 선별해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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