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 3개 섬 돌며 낙도 주민 진료에 말동무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5일 03시 00분


운항 50주년 맞은 경남 병원선
‘무의촌’ 49개 섬 찾아 年13만명 진료
주민들 “병원선 오는 날만 기다려”
응급의료 위한 근본 대책 절실… “닥터헬기 확대 등 대응력 높여야”

지난달 28일 경남 통영시 사량도 앞 해상에 정박 중인 병원선 경남511호. 통영=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지난달 28일 경남 통영시 사량도 앞 해상에 정박 중인 병원선 경남511호. 통영=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모두 조심하세요. 의약품과 의료기기들이 물에 젖으면 안 됩니다.”

지난달 28일 경남 통영시에서 뱃길로 1시간가량 떨어진 섬 사량도 인근 해상. 162t급 병원선 ‘경남511호’에 탄 의료진은 여행용 캐리어에 담긴 약과 의료장비를 1t 소형 이동정으로 하나씩 옮겼다. 이 섬은 해안 수심이 얕아 작은 배로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다.

섬에 도착한 오현근 내과 공보의와 의료진들은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이들을 기다리던 섬 주민들이 순식간에 긴 줄을 이뤘다. 의료진은 섬에 6시간가량 머물며 주민 100여 명을 진료했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는 80대 최모 씨는 “병원이 육지에 있다 보니 온몸이 아파도 병원선이 들어오는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 49개 섬마을 월 1회씩 찾는 병원선

경남511호 내부에서 치과 공중보건의가 치아 스케일링을 하고 있다. 통영=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경남511호 내부에서 치과 공중보건의가 치아 스케일링을 하고 있다. 통영=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병원에 가고 싶을 때 못 가는 비율인 ‘미충족의료율’은 경남이 9.1%로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들을 위해 운항하는 경남 병원선은 1973년 7월 처음 출항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경남511호 내에는 내과·치과·한방과 진료실과 약제실, 대기실 등이 갖춰져 있다. 상담부터 처방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한 ‘바다 위 병원’이다. 이 배는 병·의원은 물론이고 보건진료소나 약국조차 없는 외딴 섬마을을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돌며 진료한다.

병원선에는 내과 2명, 치과 및 한의과 1명씩 공중보건의 4명이 근무한다. 간호사 3명을 합치면 의료진만 7명이다. 그 밖에 항해사와 기관사 등 선박운영팀 7명도 같이 배를 탄다. 이들은 경남 7개 시군의 섬 49곳을 월 1회씩 돌며 도서지역 2500여 명의 건강을 챙긴다. 연간 진료 인원은 13만 명을 훌쩍 넘는다. 병원선은 경남 외에도 전남(2척), 인천, 충남 등에서 5척이 운영되고 있다.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섬 2, 3곳을 도는 격무지만 의료진의 보람은 상당하다. 공보의 오현근 씨는 “‘고마 이대로 살다 죽을란다’라며 치료를 잘 받지 않는 어르신을 달래며 여러 달 진료해 드렸는데 나중에 ‘매달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며 속마음을 얘기하시는 걸 들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했다.

의료진은 낙도 주민들의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제행호 선장은 “배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선착장에 줄을 서 기다리는 분들을 볼 때마다 뭉클하다”며 “사람이 그립다 보니 붙잡고 하는 말을 듣다 보면 끝이 없다”고 했다.

● “낙도 응급의료 시스템 확대해야”

경남도는 20년째 운항 중인 현 병원선이 노후화됐다는 점을 감안해 2027년부터 250t급 병원선을 새로 도입할 방침이다. 새 배에는 물리치료실과 임상병리실 등 주민 의견이 반영된 공간이 추가된다.

다만 병원선은 만성질병을 정기적으로 진료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응급 의료 수요에 대응하긴 어렵다. 해경에 따르면 지난해 섬에서 육지 구급차까지 환자를 배로 이송하는 시간은 통영해경은 평균 51분, 사천해경은 71분이나 됐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지방자치단체나 해양경찰, 소방 당국의 헬기를 동원하기도 하지만 응급 의료 전용이 아니다 보니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정백근 경상국립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육지 의료기관으로 응급환자를 빨리 옮길 수 있는 닥터헬기 확대 등 섬 안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민 진료#말동무#운항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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