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유출 혐의를 받는 LG에너지솔루션 전 직원 정모씨(50)가 수억원 받는 대가로 외부에 넘긴 자료는 회사의 로드맵(단계별 이행안)부터 구체적인 공정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정씨는 회사의 제조 시스템이 일본 등 외국업체에서 쓰일 것을 알면서도 단 수백만원에 영업비밀을 넘기기도 했다.
5일 국회에 제출된 정씨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 공소장에 따르면 정씨는 회사의 영업비밀을 몰래 촬영해 부정 취득한 자료를 누설해 2년여 동안 자문료로 9억8000만원을 챙겼다.
정씨는 회사 내부망에 접속해 자료를 띄워놓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가지고 있다가, 자문중개업체인 가이드포인트를 통해 자문 형식으로 영업비밀을 누설했다.
정씨는 본인의 집에서 자문하기 2분 전에 내부망에 접속하거나 필요할 때는 자문 도중에도 회사 내부망에 접속해 수시로 자료를 확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강원도로 휴가를 간 도중에도 회사 내부망에 있는 자료를 몰래 촬영하기도 했다.
정씨는 이렇게 부정 취득한 영업비밀을 시간당 평균 1000달러(약 132만원)의 구두 자문, 1건당 최소 3000달러(약 397만원)의 서면 자문을 하는 등 총 320여 건의 자문을 하고 9억8000만원을 받았다.
정씨는 회사가 영리 목적 자문행위를 금지하는 내부공지를 하자 가명을 만들어 자문을 수행했고, 자문중개업체로부터 실명 인증을 요구받자 동생의 주민등록증을 변조하기도 했다.
정씨가 몰래 취득한 정보 중에는 LG엔솔이 합작법인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경제성을 검토한 자료나, 자재별 원재료비를 정리한 자료 등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회사의 중장기 생산 관련 계획부터 주문재료, 납품회사, 구매단가 등 세세한 내용도 유출됐다. 정씨는 심지어 경쟁사의 동향과 이에 대한 LG엔솔의 경쟁력 확보 방안을 담은 자료도 촬영해 보관했다.
정씨의 영업비밀 누설은 대부분 자문중개업체도 참여하지 않는 ‘1:1 비공개 콘퍼런스 콜’로 진행됐다.
정씨는 자문 과정에서 회사의 2차전지 연구개발 동향과 로드맵, 생산라인 현황을 전방위적으로 유출했다. LG엔솔이 어떻게 품질 관리 조치를 개선했는지, 차세대 배터리 개발 현황과 신사업 관련 내용이 자문을 통해 누설됐다. 특정 장비가 어느 공장, 어느 라인에 적용되어 있는지 논의하거나 개발을 내부에서 했는지 외부 협업이 있었는지도 자문 논의 대상에 포함됐다.
정씨는 회사의 영업비밀인 배터리 제조 공정의 IT 시스템이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이를 일본 등 외국업체에 누설하고 2회 자문료로 2300달러(약 304만원)를 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성범)는 지난달 16일 정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씨는 2021년 5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유료자문에 사용할 목적으로 회사의 2차 전지 관련 영업비밀 16건(국가핵심기술 1건)을 촬영해 부정 취득하고, 이 자료를 이용해 2021년 4월부터 2022년 4월까지 가이드포인트를 통해 유료자문 형식으로 영업비밀을 누설한 혐의(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배임)를 받는다.
2021년 7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총 13회에 걸쳐 가명 2개를 이용해 영업비밀 누설 대가로 자문료 4000만원을 차명 계좌로 송금받은 혐의(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및 2022년 8월17일 가명으로 자문료를 수령하기 위해 동생의 주민등록증 사진 파일의 이름 부문을 가명과 유사하게 변경한 후 출력한 혐의(공문서변조)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가이드포인트 외 다른 국내 자문중개업체도 대부분 해외에 본사를 두고 1대 1 비공개로 자문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유사사례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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