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본인과 동료 교사들이 느끼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각종 대책이 발표되고 시행됐지만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 학부모를 마주하기 두렵다는 반응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정서도 깔려 있었다. 한 교사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통해 사망한 동료 교사를 추모하겠다는데 교육부가 맨 처음 꺼낸 이야기는 ‘징계’였다. 이런 교육부를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 문제는 실효성…“신고 자체 못 막아”
앞서 1일부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시행됐지만 많은 교사들은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황수진 교사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여야가 논의 중인 법안이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서는 아동학대 범죄 면책권을 주고 있지만, 법이 통과돼도 교사가 학부모에게 신고당하는 것 자체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에겐 지방자치단체의 조사나 경찰 수사를 받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라는 뜻이다. 한 교사는 “설령 내가 떳떳하다고 해도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수업 방해 학생의 분리 조치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교육부 고시는 구체적인 분리 장소, 학습지원 방안 등 세부 지침을 학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서이초 사건 후 자발적으로 구성된 ‘현장교사 정책 태스크포스(TF)’는 30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어떤 수준의 교권 침해일 때 학생을 즉시 분리할 수 있는지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지연 경기 화성시 반송초 교사는 “과밀 학급인 학교에선 학생을 분리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학교별로 운영하겠다고 한 ‘민원대응팀’도 제대로 작동할지 미지수다. 학부모의 민원을 교사 대신 교감과 행정실장 등이 일차적으로 걸러내겠다는 것인데, 현장에선 “민원 업무를 분담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한 초교 교감은 “정부 대책에는 인력, 예산 지원이 빠져 있다. 기존 자원만으로 교권을 강화하자는 뜻인데 결국 학교와 교사들에게 모든 걸 떠넘긴 셈”이라고 말했다.
● 교사-학부모 “교육부가 혼란 키워”
4일 진행된 ‘공교육 멈춤의 날’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 번복을 두고도 교사들은 교육부를 비판했다. 인천의 한 초교 교사는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겁주던 교육부가 막상 집회에 수십만 명이 모이고, 49재에 교사들이 대거 거리로 나오자 눈치를 보며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교육부의 경직된 태도가 학교 혼란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경기 하남시에서 초등생 자녀를 키우는 윤모 씨는 “상처 입은 교사들을 위해 교육부가 미리 휴업을 허용했으면 학부모들도 미리 연차를 쓰는 등 대비를 했을 것”이라며 “사태를 봉합해야 할 교육부가 혼란을 더 키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5일 “매주 1회 현장 교사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교사는 “교사들을 들러리 세우는 자리인데, 장관을 왜 만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경기도의 20년 차 초교 교사는 “정치 구호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 위로하고 추모하겠다는 교사들을 교육부는 범법자 취급했다”며 “이제 와서 장관이 사과도 없이 시혜 베푸는 듯 징계하지 않겠다고 하니 교사들은 더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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