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의무화 철회… 지역 자율에 맡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2일 03시 00분


300원 낸후 컵 반환땐 돌려 받아
세종-제주서 작년말부터 시범 시행
소비자들 불편-소상공인은 반발
예산 240억 들이고 사실상 포기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올해 첫 텀블러데이 행사에 텀블러(개인컵)를 가져온 시민들이 커피차에서 음료를 받고 있다. (뉴스1 DB)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올해 첫 텀블러데이 행사에 텀블러(개인컵)를 가져온 시민들이 커피차에서 음료를 받고 있다. (뉴스1 DB)
환경부가 2025년까지 전국에서 의무 시행하기로 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3년간 두 차례 연기됐던 일회용컵 보증금제 의무화를 사실상 철회하는 것이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10일 “전국에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의무화하기에는 사회적 비용 증가 등 무리가 따른다”며 “제도를 백지에서 검토하고 제주 등 지자체 특성에 따라 자율에 맡기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음료를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으로 구매할 때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내고, 컵을 반납하면 이를 돌려받는 제도다. 지난해 12월부터 세종과 제주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에 따라 3년 이내 전국에서 시행해야 한다.

환경부는 올해 안에 전국 확대 시행 시기를 ‘3년 이내’로 명시한 고시를 개정해 ‘데드라인’을 삭제하고, ‘전국 의무 시행’을 명시한 현행법도 개정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 자율에 맡길 경우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소상공인 “가격 상승” vs 환경단체 “즉각 시행”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2021년부터 약 240억 원이 투입됐다. 그런데도 이를 백지화하는 것은 국민적 수용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소비자가 불편을 감수하는 비용에 비하면 일회용컵이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도 높지 않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가맹점이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빵집, 패스트푸드점 등이 적용 대상이다. 3만8000여 개 매장이 해당된다. 계도 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 전국적으로 시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카페 점주 등 소상공인의 반발이 커지자 시행 한 달을 앞두고 다시 6개월 유예했다. 김광부 전국가맹점주협의회장은 “경기도 어려운데 300원을 더해 팔기가 어렵다”며 “개인이 운영하는 매장 규모가 큰 카페 등과의 형평성도 문제”라고 말했다. 보증금 300원이 자칫 가격 인상처럼 느껴져 매출이 감소할 수 있고, 설거지 등 직원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세종과 제주에서만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환경단체가 반발했다. 지난해 7월 녹색연합은 감사원에 ‘환경부가 컵 보증금 제도 시행을 임의로 미룬 것은 국회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며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지난달 발표됐다. 감사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카페 등) 매출이 많이 감소한 상황에서 반발이 커지자 시행 유예를 결정한 것”이라며 환경부의 시행 유예가 잘못은 아니라고 결론 내면서 “법 취지에 맞게 제도를 전국 확대 시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환경부는 전국 의무 시행을 강제하기보다 아예 법을 바꿔 감사 결과를 이행하겠다는 방침이다.

● 성과 갈린 제주와 세종

더욱이 시범사업을 진행했던 세종과 제주의 성과가 엇갈리면서 환경부는 지자체별 상황에 따른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세종과 제주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한 지 9개월 된 현재 시점에서 제주는 최근 컵 반환율이 상승하고 있는 반면 세종은 6개월째 정체 상태다.

지난해 12월 시행 첫 달 제주와 세종의 일회용컵 반환율은 각각 10%, 18%였다. 이후 제주는 올해 6월까지는 30%대를 오갔으나 7월과 8월 각각 53%, 64%로 뛰어올랐다. 반면 세종은 지난달까지 45%에 그쳤다. 똑같은 제도인데도 시행 성과가 다른 것은 지자체의 정책적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환경부의 분석이다. 제주는 6월부터 제도에 참여하지 않는 매장에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7, 8월 제주의 일회용컵 반환율이 크게 높아진 이유다. 환경부 관계자는 “제주 사례에서 보듯이 무리하게 의무화하기보다 지자체 자율에 맡기고 돕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 3년째 일회용컵 사용 증가…“생산 규제 필요”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된 일회용컵(종이, 플라스틱)은 2018년 기준 연 294억 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일회용컵 사용량은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의 일회용컵 사용량 등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환경부와 자발적 일회용컵 저감 협약을 맺은 전국 커피전문점(15개 브랜드)과 패스트푸드점(5개 브랜드)에서 사용한 일회용컵은 10억3590만 개다. 2019년(7억7311만 개) 이후 2020년(9억6724만 개), 2021년(10억2389만 개)에 이어 지난해까지 3년째 늘어나고 있다.

일회용컵 사용 자제가 절실한 상황인데도 3년간 약 240억 원의 예산을 쓴 보증금제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정부에서 포기하면 지자체도 시행하기 어렵다”며 “장기적으론 반드시 가야 할 길인 만큼 포기할 게 아니라 정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이미 2003년 시행됐다가 안착하지 못하고 2008년 폐지된 제도다. 당시 일회용 컵 회수율이 30%대에 머물고 소비자에게 불편을 전가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실패한 제도’가 됐다. 이런 시행 착오에 대한 반성 없이 보증금제를 재도입한 것은 안이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 업무혁신 TF 레드팀 회의에서 일회용품 소비를 제한하기보다 유럽처럼 생산 단계에서 규제를 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효과적인 일회용품 감축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일회용컵#보증금제#전국 의무화 철회#지역 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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