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균용, 軍판사때 윗선압박에도…“고문의심” 간첩몰린 시민 무죄 선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2일 1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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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가 1987년 군 판사 시절 간첩으로 몰린 시민에게 “고문에 의한 자백이 의심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군사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사건은 유죄 선고가 불문율이었던 시기여서, 이 후보자는 판사 임용이 힘들어질 것이란 상부 압박에 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 개업을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가 12일 입수한 이 후보자의 1987년도 제주방어사령부 보통 군법회의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1970년 무렵부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지도원과 접촉하며 군부대 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 행위를 한 혐의(진영간첩,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등으로 군 검찰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제주시의 보안부대 사법경찰은 1978년 무렵부터 24차례에 걸쳐 해군 경비정의 귀항 시간, 어선들의 귀항 신호들을 수집하고 군납 도시락 장사 등을 하며 군 부대의 인원 및 무기 현황을 파악한 혐의 등으로 A 씨를 체포했다. 이후 수사 및 검찰조사 과정에서 나온 A 씨의 구체적인 자백 내용이 공소사실에 담겼다.

하지만 당시 해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며 해당 사건의 주심을 맡은 이 후보자는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한 자백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이 후보자는 당시 판결문에서 “피의자가 연행되고 1주일 동안 작성된 조서가 없다가 이후 범행을 모두 자백하는 진술서가 작성되는 등 수사관의 가혹행위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피고인이 1954년부터 1981년까지 일어났던 일을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30년 전부터 있었던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무런 자료도 없이 일시, 장소, 상황, 대화내용 등 미세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기억하여 진술하고 있다는 것은 위 자백 내용이 객관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정상인의 경험칙에 반한다 할 것”이라며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과정에선 실제로 보안부대 수사관들이 잠을 재우지 않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등 가혹행위를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A 씨가 군 경찰 및 검찰 조사 때와 달리 재판에 와서 간첩행위 지령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점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외에 실제 조총련 관계자를 만났다고 인정할 만한 직접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 점 등도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됐다. 군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보고 항소를 기각하면서 이 판결은 확정됐다.

이 후보자를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당시 이 판결 과정에서 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 개업을 고민했다고 한다. 제5공화국 시기였던 당시 군 내에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은 판사가 유죄를 선고하는 게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후보자의 상관은 무죄 판결을 내리겠다는 이 후보자에게 “무죄 판결하는 순간 (전역 후) 판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압박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이후 각종 시국사건에도 법리 중심으로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택연금한 서울 마포경찰서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10년 만에 정식 재판에 회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1998년 6월 전·현직 언론인 7명이 반공법·포고령 위반으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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