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현지에서 살인사건을 저지른 미국인이 인천국제공항으로 약 6만5000명분의 마약류를 들여왔다가 붙잡혔다. 그는 태국 마약조직에서 활동하며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연관된 다른 미국인과 함께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마약 유통망을 구축한 중국 국적 조선족의 지시에 따라 국내에 마약류를 들여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선 “한국이 국제 마약조직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국내에 마약류를 유통한 외국인 등 일당 10명 중 8명을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그리고 76억 원 상당의 필로폰 2.3kg과 합성대마 약 3억4000만 원어치(1355mL)를 압수했다.
범행은 한 번도 한국에 체류한 적 없는 중국 국적 조선족 총책 A 씨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그의 지시에 따라 미국인 B 씨는 가방에 진공 포장된 필로폰 1.95㎏(약 6만5000명분)을 숨긴 채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지난달 2일 여행객으로 위장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B 씨는 태국 마약 조직에서 활동하던 2015년 11월 당시 태국 파타야의 범죄조직 두목 살해에 가담한 혐의로 태국 경찰에 수배 중이었다.
당시 살인사건의 공범인 다른 미국인 C 씨는 이번에도 B 씨의 필로폰 밀수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당국에 따르면 C 씨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도 연관된 인물로 현재는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입국 후 국내 유통책에게 필로폰을 전달하려다 붙잡힌 B 씨는 지난해 3월 국내로 필로폰 1.5kg을 밀수한 공범이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C 씨는 지난해 11월 야구 배트에 필리핀 500g을 숨겨 국내로 밀수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의 공범이었다.
B, C 씨 등에게 범행을 지시한 사람은 조선족 A 씨다. 그는 텔레그램으로 밀수와 유통을 모두 관리했다. 국내에선 “큰돈을 벌 수 있다”며 마약 구매자였던 한국인들을 유통책으로 포섭했다. A 씨는 배신을 우려해 유통책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든 채 “나 ○○○는 오늘부터 A를 위해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영상을 찍어 보내게 했다.
경찰은 A, C 씨에 대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 수배 조치를 취했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 내 A 씨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며 “수사하면서 마약 범죄가 생각보다 더 국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돼 놀랐다”고 했다.
A 씨는 서울 한복판에서 마약 제조를 지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그의 지시로7, 8월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비커 등으로 합성대마 총 3800mL를 제조한 베트남 국적의남성도 붙잡았다. 유통 과정에선 공원 야산에 마약을 파묻는 ‘신종 던지기’ 수법도 동원했다.
대검찰청 마약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마약 밀수 사범은 2018년 196명에서 지난해 551명으로 약 3배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처럼 국내 사정에 밝은 해외 마약조직 관계자에 의해 마약 범죄가 갈수록 국제화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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