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진단기기인 초음파, 뇌파계(뇌파 측정 기기)에 이어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활용해 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합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무책임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13일 입장을 내고 “현행 의료법이 의료와 한방의료를 이원화해 규정하고 있음에도 수원지방법원이 의료법에 반해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인 저선량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한 것에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16년 1월 김필건 전 한의협회장은 골밀도 측정 시연에서 ‘한의사가 골밀도를 측정하는 데 아무런 어려운 내용도 없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한골대사학회 등 전문가들은 최소 3가지 오류를 범했다고 판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당시 김 전 한의협회장은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골밀도 값(T score)을 측정해 ‘-4.4’로 나오자 “골밀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골수를 보충하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50세 미만의 경우 T score를 적용하지 않고, 발뒤꿈치가 아닌 엉뚱한 곳을 진단했으며, 골감소증 진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당시 시연에 대해 “아무 곳이나 대충 검사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 내용을 임의로 해석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의협은 “이 같은 골밀도 측정값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국민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면서 “수원지방법원이 이 같은 전례를 다시 소환한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행위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므로 과학적으로 입증된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공돼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이번 판결은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함으로써 발생될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끼칠 심각한 위해를 명백히 무시한 무책임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는 의료와 보건 지도를 임무로 하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의사와 한의사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는 수 차례에 걸쳐 한의사가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해 진료행위를 한 것이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의협은 “그럼에도 수원지방법원은 각 의료 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파괴해 버리는 판결을 했다”며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며, 그 결과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게 될 것임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이번 판결로 발생할 현장의 혼란과 국민보건상 위해 발생 가능성, 그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에 대해 극도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이번 판결로 발생하게 될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피해는 온전히 재판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한의사들이 이번 판결을 빌미삼아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도한다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적인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수원지방법원은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진료에 사용한 한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약식명령(벌금 200만원)을 받은 사건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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